어느푸른저녁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생각만을

시월의숲 2015. 7. 16. 22:48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온도가 낮은 바람이 제법 불어서 시원함마저 느껴지는 날씨였다. 이런 날, 대구로 출장을 다녀왔다. 대구는 무척 더울 것으로 생각했으나 예상외로 선선한 날씨에 기분이 얼떨떨했다. 그 얼떨떨함이 좋았다. 네 명이 카풀을 해서 갔는데, 내가 운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나도 편안히 다녀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직장을 벗어나니 좀 살 것 같았다. 매일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조금의 여유도 없이 몰아치는 업무 때문에 그동안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편안해지고 익숙해져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텐데, 어쩐지 지금의 직장에서는 그것이 쉽지 않다. 내가 이곳에 온 지도 일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이곳의 분위기는 나를 옥죄고 억누른다. 나는 늘 무언가에 시달린다. 답답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고 만성이 된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오로지 아무것도,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다는 생각만 하고 싶다. 일 외에 다른 생각을 하고 싶으나, 늘 일에 대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방해하니, 차라리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편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외부적인 어떤 것이 나를 격렬하게 뒤흔들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며, 그것은 늘 무언가를 종용하고, 추궁하고, 몰아치고, 지시하고, 강요한다. 나는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보낸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나는 종종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에 몸이 떨린다. 이러다 삶이 끝난다면 나는 내 삶을 살았다 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그조차 나에게 확실히 묻지 못한다. 내가 정색을 하고 나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나라는 존재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지금 죽어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때로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