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말할 자유와 침묵할 의무

시월의숲 2015. 7. 8. 23:09

나는 왜 조금만 친해지면 말이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친해졌다기보다는 조금만 익숙해지면, 혹은 조금만 편안해졌다 싶으면 말을 많이 하게 된다. 하고 나서 늘 후회를 하면서도, 왜 쓸데없이 말이 많아지는지.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내 안에 언어로 가득한 창고가 있어, 마음이 조금만 편안해졌다 싶으면 넘치는 물을 쏟아버리듯 그렇게 밖으로 내뱉게 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마음이 편안해질 때만이 아니다. 여러가지 요인에 의한 스트레스에 심신이 지치는 와중에도 이상스레 과장된 어조로 말하게 되는 때가 있다. 전혀 즐겁지 않으면서,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실제로 그렇게 보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히려 웃음이 헤프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공감한다는 듯, 이해할 수 있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들을 지껄이기 시작한다. 말해봤자 입만 아플 이야기들을. 그 수다스러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해 꺼낸 말들이 오히려 분위기를 더 어색하게 만드는 상황에 봉착할 때가 있다. 긴장감을 감추기 위해 시작한 말에 더욱 긴장하게 되는 때도 있다. 말을 하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말.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하게 되는 말. 나조차도 어쩔 수 없는 말. 말 때문에 곤욕을 치르면서도 나는 왜 매번 배우지 못하는가.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가면서 침묵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 혹은 말을 가려서 하는 방법 같은 것을. 내 본능은 자유롭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두서도 없고, 논리도 없이, 그저 내가 느낀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말하라고 하는데, 내 이성은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참아야 한다고 말한다. 꼭 필요한 말을 골라서 해야만 하고, 될 수 있으면 침묵을 지키는 편이 수다스러운 것보다는 이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꼭 필요한 말만 해야 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피곤하고 삭막할까.


나는 그것이 자유를 억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말할 자유. 하지만 지금 내겐 말할 자유보다 침묵하는 지혜가 더 필요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말하는 방법보다는 침묵하는 방법을 더 잘 터득하는 것 같다. 마치 그것이 사회생활의 지혜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보기에 그것은 지혜로움을 빙자한 의무 혹은 지나친 자기방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말하지 않겠어, 내가 여기서 말을 했다간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고, 무슨 일이 떨어질지 모르는데! 그냥 입 꾹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야,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니까.' 하지만 내 고민은 그것이 아니다. 내 고민은, 내가 하는 말의 대부분이 상대방에게 '쓸데없는' 것이기 때문에 생긴다. 그 '쓸데없는 말'이 때로 상대방에게 무심히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무참히 상처받기도 한다는 것을. 그러니 나는 말할 자유보다 침묵할 의무에 대해서 생각해야만 한다. 혹, 누군가 어쩔 수 없는 내 수다스러움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나는 나를 혐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