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벽화가 완성되기 위하여

시월의숲 2015. 7. 20. 22:47

며칠 전부터 내가 사는 사택 앞에 벽화 작업이 한창이다. 사택 입구 맞은 편에 고등학교가 있는데,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이를 둘러싸고 제법 폭이 넓은 담벼락이 길게 이어져 있다. 처음에 그 담벼락은 회색빛의 무표정하고 차가운 시멘트로만 채워져 있었는데, 어느 순간 하얀색으로 칠해지더니, 급기야는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얀 벽을 빼곡히 채운 스케치만으로도 볼품없던 벽이 전혀 다른 표정을 지닌 벽으로 탈바꿈 되었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갖가지 색으로 빈 공간이 채워지기 시작한다. 아침마다 벽화가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요즘 내 삶의 작은 기쁨이 되었다. 미술학과 학생들인지, 어려 보이는 작업자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꼿꼿이 서서 벽화를 그리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내게 커다란 에너지를 준다. 완성된 벽화의 모습이 무척이나 궁금하고 하루 빨리 보고 싶지만, 그 보다 중요한 건, 완성을 향해 나가가는 시간들이 아닐런지. 벽화가 완성되기 위해 기울여야 했던 노력과 시간들 말이다.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변화하는 벽화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이미 완성에 다다른 것인지도 모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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