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고통은 영원하다

시월의숲 2015. 8. 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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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엑스코에서 하는 반 고흐 미디어아트전에 다녀왔다. 전시회는 내 예상과는 달리 커다랗고 긴 스크린에 빔 프로젝터로 고흐의 그림들을 영상으로 비춰주는 방식이었다. 하긴, 고흐의 진품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아닌 이상, 모조품을 벽에 걸어놓고 진지하게 감상하는 것처럼 우스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미디어아트라는 이름 하에 프로젝터를 이용해 커다란 스크린에 그림을 보여주는 지금의 방식이 아마도 최선이었을지 모른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고흐의 간략한 일대기 혹은 시기별 작품경향이 짤막하게 요약되어 있었고, 스크린 사이사이에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글이 소개되어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화면 속 고흐의 그림들도 물론 인상적이었지만, 나는 스크린 사이사이에 적혀 있는 고흐의 글귀가 더 인상적이었다. 오래 전에,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글을 모아놓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은 기억 때문이었을까? 화면에 등장하는 그림보다는 그 짧막한 글이 더 손에 잡힐 듯 느껴졌고, 그 글 속에 고흐의 고통과 고뇌가 더 녹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저 문장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마치 사로잡힌 듯 움직일 수 없었다.

 

 '고통은 영원하다'

 

고흐의 그림들이 바로 고흐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듯, 고흐가 한 저 말은 오로지 고흐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고흐이기 때문에 비로소 실감할 수 있고, 고흐이기 때문에 비로소 무게를 갖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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