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우리는 늘 실패한다

시월의숲 2015. 8. 12. 21:08

우리의 실패와 변화도 이 사소한 것들과 세상의 거창한 이론들이 맺게 되는 관계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늘 실패한다. 우리가 배웠던 것, 세상의 큰 목소리들이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것들과 우리의 사소한 경험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고 엇나갈 때 우리는 실패한다. 우리들 개인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가 저 큰 목소리들 앞에서는 항상 '당신의 사정'이다.……그런데 우리는 그 실패의 순간마다 변화한다. 사람들마다 하나씩 안고 있는 이 사소한 당신의 사정들이 실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사정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 바로 그 변화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있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것 같은 큰 목소리에서 우리는 소외되어 있지만, 외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당신의 사정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글쓰기가 독창성과 사실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사소한' 사정을 말한다는 것이다.(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난다, 2013.)

 

 

*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럴 것이다. 나 역시 '사소한 나의 사정'을 말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어쨌든 나는 늘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은 실패의 기록이다. 그래서 나는 변화했는가? 그 물음 앞에서 나는 망설인다. 저자는 누군가의 사정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 그 변화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있다, 고 그는 말한다. 실제로 무언가가 변화하지 않더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만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을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은 너무나 성급하고, 얄팍하며, 솜사탕 같이 순간의 달콤함만 남긴 채 금방 녹아버리는 가벼운 말은 아닌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마음을 파고드는 이 따스함은 무엇인지. 어쩌면 그것은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위로가 아니었을지.

 

 

*

우리는 늘 실패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실패의 순간마다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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