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한다

시월의숲 2015. 8. 17. 22:10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한다. 하루가 끝날 때, 우리 안의 그 무엇이 허무한 고통이란 형태로 끝이 나는지. 우리가 단지 그림자들 사이의 허상에 불과한지. 현실이란, 충격으로 깨어지기 전까지는 호수 위 갈대밭에 야생오리 떼가 내려앉지 않는 거대한 침묵에 불과한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조차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단지 해초만이 가득하다. 미래의 하늘이 부드러운 몸짓으로 다가온다. 잔잔한 미풍 속에서 불확실성이 서서히 열리며 별이 나타난다. 고립된 사원에서 신에게 봉납된 횃불이 흐릿하게 펄럭인다. 버려진 농장의 저수자가 햇빛 속에서 고요하게  정지한 호수로 변한다. 그 누구도 한때 나무둥치에 새겨졌던 이름을 더 이상 알지 못한다. 모르는 자들의 특권이 아무렇게나 찢어발긴 종잇조각처럼 들판 위로 날아가다가 우연한 장애물에 걸려 멈춘다. 다른 이들이 그들을 앞서 살았던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게 된다. 어두운 그림자를 잊은 자는 계속해서 잠들면서, 그가 한번도 보지 못한 태양을 갈구한다. 그리고 어떤 행동도 하지 않기를 감행하는 나는 후회 없이 죽으리라. 축축한 갈대숲에서, 강가의 진흙과 나 자신의 몽롱한 피곤으로 더럽혀진 채. 넓게 펼쳐진 가을 저녁 불가능의 국경에서. 이 모든 것을 통하여, 나는 백일몽 뒤편에서 앙상한 공포처럼 쉭쉭거리는 내 영혼을 느끼리라. 세계의 어둠 속에서 헛되이, 맑고도 깊은 소리로 울부짖는 그것.(360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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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끝난다. 어제는 끝났고, 오늘도 끝나가며, 내일도 끝날 것이다. 하루가 끝날 때, 내 안의 '그 무엇이 허무한 고통이란 형태로 끝이 나는지', 나는 결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무엇'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허무한 고통이란 형태로 끝났고, 끝나가며, 끝날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들 사이의 허상'이고 '야생오리 떼가 내려앉지 않는 갈대밭의 거대한 침묵'이다. 페소아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기를 감행'함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후회없이 받아들인다. 페소아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허무와 침묵, 불확실성과 불가능성, 진흙과 몽롱한 피곤, 공포 사이에서 울부짖는 것인가. 아니, 울부짖을 수밖에 없는가. 그럴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은 무엇일까. 나는 그의 무엇에 그토록 빠져드는 것일까. 우리가 결코 알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그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인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을, 세계의 어둠을 말하려 하기 때문인가. 알 수 없으므로 나는 페소아의 글을 읽고 또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