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떤 폭력

시월의숲 2015. 8. 23. 23:30

우리가 왜 만났는지 알 수 없었다. 한 친구는, 적극적으로 우리들의 만남을 이끌고 주도하였지만,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인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인지(정작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 알지도 못한채) 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눈치였다. 혹은 누군가 정해놓기라도 한듯, 이상적인 친구모임은 어떠해야한다는 강박 때문에, 일 년에 몇 번은 반드시 만나야 하며, 심지어 나중에 결혼을 하여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들까지 포함하여 가족 단위 모임까지 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나는 그가 말하는 그 모든 미래의 예측가능한(그렇게 믿는) 스토리를 들으면서, 어떻게 저렇듯 앞일을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지 경탄스러웠으며, 그가 그렇게 말하는데는 저 자신의 여유있고,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며, 지극히 순탄한(물론 자신은 처가식구들로부터 비롯된 어려움에 대해서 토로하지만) 결혼생활과 직장생활로 인해 타인들까지 그럴 것이며, 그럴 수 있을 거라는 굳건하고 견실한 믿음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그것만이 올바른 길이며,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도 그렇게 되어야 하며, 당연히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문은, 그것이 속이 빈, 그저 인사치례에 지나지 않는 말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 어떤 이들에게는 폭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는 결코 알 수 없었다. 폭력이라니! 그는 오히려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겠지.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그의 생각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것은 친절하고 사려깊은 얼굴로, 조용하도고 은밀하게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이들이 그가 말하는대로 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 중에서 (나를 포함한)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은 분명 그의 말에 상처를 받을 것이며, 다음부터는 결코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들과 어떠한 접점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매번 그들을 만날 때마다 절감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들이 하는 말을 나는 듣지 않고, 내가 하는 말을 그들은 듣지 않는다. 우리들의 대화는 매번 다른 곡선을 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서로 말을 주고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주고 받는 말들이 과연 어떤 무게를 가지는지, 어떤 진실을 품고 있는지, 어떤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알지도 못한채 그저 만나기 위해 만난다. 나는 왜 이런 만남을 계속하면서 서툰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언제까지 이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나 스스로도 그들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그들도 내 깊은 내면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데. 같은 또래, 같은 성별의 다른 사람들도 우리들처럼 그러할까? 아니다. 그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따로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결정적인 문제는 나한테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들과 만나면 만날수록 그들을 친구라고 부르는 것조차 망설여진다. 허울뿐인, 만나면 고민만 쌓이는 이런 관계를 나는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나는 매번 두렵고, 두렵기 때문에 또 슬프다. 마치 형벌같은.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의 기억  (0) 2015.09.04
무언가를 조금씩 쓴다는 것  (0) 2015.08.30
어떤 날  (0) 2015.08.17
보면 알 수 있는 것과 봐도 알 수 없는 것  (0) 2015.08.14
우리는 늘 실패한다  (0) 2015.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