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무언가를 조금씩 쓴다는 것

시월의숲 2015. 8. 30. 19:29

무언가를 조금씩 쓴다는 것.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쓴다는 것이 반드시 종이에 연필을 사용하여 문자를 기재한다는 일차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무엇에든 어디에든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나는 지금도 쓰고 있다. 엄밀히 말해 이것은 키보드를 치는 행위이지만, 키보드로 치는 것이 다름아닌 글자라는 점에서 글을 쓴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시대에 따라 글을 쓰는 모습도 달라질 수 있고, 달라져 왔으므로. 중요한 것은 생각을 글로 표현한다는 행위 자체이다. 누군가 그랬던가. 무언가를 조금씩 쓰다보면 언젠가 달라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이 말이 아니면, 무언가를 매일 조금씩 쓰다보면 언젠가 작가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이도저도 아닐지 모른다. 어디선가 읽고 들었을, 글쓰기에 대한 여러가지 말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임의로 조합되어 나온 말일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지금 무언가를 조금씩 쓴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것의 의미에 대해서.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생각해내지 못한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는 늘 무언가를 조금씩 쓰고 싶었다. 하지만, 매일 무언가를 쓴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을 진작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래서 조바심을 내지 말고 그저 내가 쓰고 싶을 때, 아무런 형식이나 내용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쓰자고 다짐을 했으면서도, 며칠간 아무것도 끄적이지 않고(쓰는 것이 아니라!), 며칠 전에 읽은 책에 대한 간단한 감상이나, 내 마음을 움직인 것들에 대한 단 몇 줄의 인상조차 쓸 수 없을 때면, 나는 이상스런 조바심과 불안감으로 계속 블로그를 들락거리면서,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책을 하는 것이다. 내 이런 자책이 도무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고, 내가 내킬 때 글을 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가 작가라도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단 몇 줄의 문장도 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이 마음은 도대체 어떤 연유에서인가. 무언가를 조금씩 써야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 때문인가. 나는 나를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그저 막연한 인상만으로 나는 무엇을 그리도 쓰려고 한다는 말일까. 실제로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무언가를 쓴다고 해도 거짓과 변명으로 가득한 허위의 말들만 토해낼 뿐인데. 이런 쓸데없는 진지함 또한 내가 버려야 할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이리라. 결국 무언가를 조금씩 쓴다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한탄뿐인 말들만 잔뜩 쏟아내고 말 것임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으면서도 또 그조차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내면의 불안이 나를 자꾸만 충동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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