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떤 날

시월의숲 2015. 8. 17. 22:57



*

언제인지 모를, 그리 멀지않은 어떤 날에, 나는 누군가의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거기 빛과 어둠을 머금은 구름이 하늘을 꽉 메운채 펼쳐져 있었다. 나는 무엇에 이끌리듯 자연스레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 셧터를 눌렀다. 그때 내가 집으로 가고 있었는지, 집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 차를 몰고 있었는데, 내 옆에 누군가 타고 있었는데, 그게 누구였을까. 단지 저녁무렵이었을 거라는, 불확실한 기억밖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사방이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사진을 보니 빛보다는 어둠이 꽤 짙다. 하늘에는 아직 빛이 남았는데, 지상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지상에 내려앉은 어둠은 어둠인가, 어둠의 그림자인가. 어쩌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것도 중요해지지 않는 날이 있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그냥 그런 날이 있었다. 아마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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