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각자의 방

시월의숲 2015. 10. 12. 23:40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아니, 대학교 때까지 내 방이 없었습니다. 나는 늘 나만의 방을 꿈꿨습니다. 그 당시 쓴 일기에도 내 방에 대한 열망을 무수히 기록했었지요. 그렇게 말하자 그는, 그 당시에는 다들 그렇지 않았나요? 그때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의 방을 가지지 못한 채, 자신의 형제나 부모들과 함께 한 방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정말 그런지 알지도 못한 채, 아, 그랬던가요, 그 시절에는 다들 그렇게 한 방에서 형제들과 부모, 혹은 조부모들과 함께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숙제를 하고 일기를 썼던가요, 그랬던가요, 그 말만 반복해서 했다. 정말 그랬나. 그 시절에는 다들. 그 시절에 다들 그랬다고 하더라도 나는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우물거렸다. 무언가를 더 말해야 하는데, 해야만 할 것 같은데,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말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당신 말이 맞아요. 그때는 정말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을 가지지 못한 채 살았다 하더라도, 내가 나만의 방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방과, 내가 가지지 못한 방은 결코 같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리라. 그들의 열망으로 내 열망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거나 넘칠 것이며, 다른 색깔과 질량, 무게, 어둠, 슬픔을 가질 것이라고. 그러므로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한 얼굴로, 다들 그렇지 않으냐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폭력일지도 모른다고. 어떤 종류의 기억은 그런 무심한 말로 사라지지 않고, 어떤 종류의 고통은 그런 무심한 말로 덜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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