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이질적인 삶

시월의숲 2015. 10. 8. 22:21

1.

후회없는 삶이란 있는 것일까?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면 과연 후회가 없을까? 남들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보통의 사람들이 하지 않는 경험을 하고 산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행복할까 아님 덜 행복할까? 한 사람이 경험한 과거는 그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 경험이 많고 다양할수록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가?


2.

과거에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해 말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은 듯한, 영화를 한 편 본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비단 나 혼자만 느낀 감정은 아니었던지,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들으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군요', 혹은 '참으로 거칠 것 없는 삶을 살았네요',  '부모님 속을 엄청 상하게 했겠어요', 라며 한 마디씩 했다. 그는 거의 두 시간 동안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주로 학창시절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했던 반항과, 자신의 연애사, 욱하고 치미는 성격에 대한 것이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누군가 나에게, 지금 이 자리에서 제일 부러워해야 할 사람이 저기 앉아 있네요, 라고 말했다. 나는 사실 그의 삶이 그리 부럽지는 않고, 단지 조금 놀라울 뿐이었지만,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참으로 질풍노도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학창시절을 보냈군요. 당신이 한 일탈과 반항이 내겐 놀랍기만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하고 싶은대로 다 하면서 살아온 것 같아, 그 부분이 부럽다면 부럽네요. 당신은 정말 후회없는 삶을 산 것처럼 보입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은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원없이 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후회없는 삶을 살았다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가 정말로 후회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인지, 후회없는 삶이란 없는걸 알기에 그저 체념하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후회를 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정말 후회없는 삶을 산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의 경험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는 확신이 그가 말하는 사이사이 무의식적으로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산 그가 한편으로는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와는 아무런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삶에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 그것은 이질감이었다. 물과 기름처럼 결코 섞일 수 없는. 나는 결코 그런 삶을 살 수 없고, 그 또한 내 삶을 상상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얼핏보면 우리는 모두 거기서 거기인듯 보이지만,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모두 다 다르다. 나는 그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것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존재할 뿐. 어쩌다 그들이 만난다고 해도 그들은 영원히 서로를 알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내 지나친 아집 혹은 편견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슬픈 예감과도 같이 결코 틀리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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