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시월의숲 2015. 10. 20. 23:42

내가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나. 나는 너무나도 세속적인 욕망으로 나를 드러내기를 바랐다. 참으로 맥빠지고 슬프며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내가 우스워서 참을 수가 없다. 나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보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은 나 스스로를 우습게 만드는 일이었음을 이제는 알겠다. 그것이 얼마나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이었는지. 지금 내게 남은 거라고는, 짧은 기간이나마 했던 기대와 상상, 그것의 허무함과 비참함이다. 오늘 아침 난초에 물을 주기 위해 화분을 들다가 받침대를 떨어뜨려 깬 일에 대해서 어떤 비관적인 예감을 느꼈던 나 자신의 비참함.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실을 두고 마치 그것이 무슨 징조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었던 나 자신이 우스워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사람은 얼마나 비열해질 수 있는가. 사람은 얼마나 속물이 될 수 있는가. 누군가 말하리라. 넌 너무 망상에 젖어 있어.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만 하니까 지금껏 결혼도 못하고 있는거야. 그건 정말 아무 일도 아니야. 아침에 화분받침 하나 깨졌다고 해서, 누군가 다치는 것도 아니고, 시험에 떨어지는 것도 아니야. 그건 인간이 나약하기 때문이야. 생각의 힘? 비관적인 생각을 하면 액운이 따라오고, 좋은 생각을 하면 행운이 따라온다고? 그거야 말로 아무런 근거가 없는 생각일 뿐이지. 모든 것은 단지 실력이나 능력(그것도 실제로 아무런 기준도 존재하지 않지만 누군가 정해놓기라도 한듯)에 달려 있는 것인데, 그것이 마치 화분이 깨진 탓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말이야. 그렇다. 모든 인간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그냥 나 자신이라고만 해도 된다. 내가 무엇을 기대한 것인지, 내가 진정 원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결과는 참담했고, 그로 인해 그동안 조금 들떠있던 기분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고, 기분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아 기쁘기까지 하다. 하지만 나는 페소아처럼 되지는 못하는 것일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능력'이 내게는 정영 없는 것일까? 나는 지금 나를 비춰볼 수 있는 타자를 원하고 있는가. 참담함 외에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길래? 어쩌면 내가 바란 것은 바로 그 참담함이었던가? 그로 인해 비로소 더 쓸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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