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떤 꿈

시월의숲 2016. 1. 24. 16:45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것이 꿈인지, 단지 몽상일 뿐인지, 아니면 꿈이거나 몽상 둘 다 인지 알 수 없다. 꿈에서 나는 어떤 그림 앞에 서 있다.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알 수 없다. 실내 미술관이 아니라 야외 전시장이다. 그림들은 어떤 벽이나, 나무 등에 걸려 있다. 내가 보고 있는 그림은 벽에 걸려 있었던 것 같은데, 작은 크기의 그림이 여기저기에 두서없이 붙어 있다. 나는 말한다. 이 그림과 저 그림을 이렇게 서로 선으로 연결하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액자틀의 외부에서 뻗어 나오는 것처럼 벽에다 선을 그리는 거죠. 그렇게 이 그림과 저 그림, 저 그림과 이 그림을 서로 연결하면 그 자체로 하나의 또 다른 의미를 생산하는 예술작품이 되지 않을까요? 아마도 그렇게 말했다고 느낀 순간, 얼굴이 뭉개져서 알아볼 수 없는 누군가(분명 그 그림을 그린 작가였으리라)가 다가와, , 그럴 수도 있군요! 하며 놀라는 목소리로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나는 걸어서 전시회장을 빠져나오는데, 오른쪽으로 낮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집 안쪽에서 누군가의 통곡소리가 들린다. 나는 자연스레 그쪽을 돌아본다. 한옥으로 지어진 집의 마당에 풍덩 주저앉아 웬 노인이 소리 내어 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가 무슨 말인가를 했는데, 울음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다. 노인의 얼굴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노인인지 아닌지도 알아볼 수 없지만, 노인일거라는 확신이 든다. 누군가 죽은 것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걷기 시작한다. 햇살이 온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다. 여름인 것 같다. 나무들의 잎사귀가 공격적으로 푸르다. 담쟁이 넝쿨이 낮은 담장을 둘러싸고 있다. 그제서야 나는 더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내 꿈에서 깨어난다. 꿈이 무의식의 발로라면, 내 무의식은 내게 무슨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아니, 이런 생각은 너무나 고리타분하다. 꿈은 그저 꿈일 뿐. 그것은 단순히 무의식 혹은 의식의 파편일 뿐. 혹은 꿈은 그 자체로 다른 차원의 세상일 뿐. 꿈을 해석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있을까. 꿈을 꾸고 나면 보통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때로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나기도 한다. 기억나지 않는 꿈은 오히려 느낌만은 생생히 남는데, 이번에 꾼 꿈은 아무런 느낌도 남아있지 않다. 기억나지 않는 꿈은 느낌이 남고, 생생히 기억나는 꿈은 아무런 느낌이 남지 않는 것인가. 꿈의 서사라는 것이 있을까. 꿈의 서사와 현실의 서사는 어떻게 다른가. 아무런 느낌이 남지 않는 꿈은 지금처럼 꿈 그 자체를 기록할 수 있고,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 꿈은 그것의 느낌에 대해서 기록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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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난 뒤,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을 읽고 있는데 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내 꿈들이 작업에 유용할 때 더 잘 기억한다. 내용과 상관없이 꿈들을 다시 상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 꿈들은 너무도 체험한 일들의 기억처럼 구성되어 있어 때로 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 아닌지 궁금하다. 잠을 잘 못 잘 경우 나는 더 많은 꿈을 꾸는데, 어쩌면 꿈들을 더 잘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꿈을 해석하지 않는다. 내 꿈들은 내게 다른 사람들의 꿈들과 마찬가지로 이상하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꿈에 대해 말하는 것은 나를 웃게 만든다.(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