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증오는 나의 힘

시월의숲 2016. 1. 27. 22:06

오늘은 너와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내가 한 일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갑자기 누군가로부터 모진 말을 들었을 때,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버텨온 힘이 사라지고, 지금까지 내가 애써온 모든 일들이 無화 되는 것을 느꼈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휘청거림에 대해서, 땅이 꺼지는 듯한 허탈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럼 너는 말할까. 네가 모진 말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다리가 꺾이고, 하늘이 무너지고, 사방이 캄캄한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듯한 느낌을 아느냐고. 절망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고. 너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되려 나를 나무랄지도 모른다. 고작 그 정도의 말을 듣고 허탈이니, 고통이니 하며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고 있다고. 나약한 말만 늘어놓고 있다고.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아느냐고. 나는 말한다. 내가 듣고 싶었던 건 그런 꾸지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저 응석을 부리고 싶었음을. 나는 아무한테도 이런 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펐던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왜 이런 아무것도 아닌 일에 자꾸만 움츠러드는 것인지.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것인지. 왜 자꾸만 나는 이런 종류의 일을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라는 생각만 강하게 드는 것인지.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도 싫고, 누군가에게 잘못을 지적 당하기도 싫다. 나는 점점 소극적이 되어가고, 작아지고, 움츠러든다. 오래 전 내가 들었던 수많은 모진 말들은 다 무엇이었나. 내 유년시절 동안 나를 관통했던 증오와 분노의 말들, 내가 곧 증오이자 분노 그 자체처럼 느껴졌던 수많은 모진 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나는 그것이 내 발판이자 토대가 되어 그것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지금의 나를 더 위축되게 하고, 작아지게 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다. 나는 면역력이 없는 아이와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면역력은 점차 떨어진다. 이 우스운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야만 할지. 너는 알겠니. 나는 너에게 꾸중을 바란 것이 아니라 위로를 바랐는데. 너는 어김없이 나를 나무랄 것만 같아 나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오늘은 너와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너는 이런 내 마음을 알 수 있겠니. 오, 나는 간절히 바란다. 허탈과 휘청거림이 내게 증오를 가져다 주기를. 그리하여 증오가 나의 힘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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