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시월의숲 2016. 4. 16. 20:47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 했는지, 왜 조금만 부주의해도 사고가 날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는지 나조차도 정말 알 수 없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내 몸과 내 의식을 연결해주고 있는 연결고리가 무척 가늘어져서, 여차하면 툭 끊어져버릴 것 같은 불안함이 온 몸을 감쌌다. 나는 그 선이 끊어지지 않게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 정신이 와해되고 온 몸이 부서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그렇게 마셨는지도 모른다. 술을 마시면 지금 나를 점령하고 있는 피곤과 불안,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술을 마셔도 남는 건 숙취뿐이었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하루종일 끙끙대고 있으니,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이것이 잠시 지나가는 현상일 뿐인지, 아님 지금 내게 어떤 돌파구가 필요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지금 나를 점령하고 있는 이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단순히 극도의 피로함 때문만은 아니다. 온전히 사고할 수 있는 정신이 점차 고갈되는 느낌이 든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휴식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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