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스러울 만큼 깊숙한 마음속에 나는 내 의식의 외적 성분을 구성하는 매일의 인상들을 기록한다. 글로 쓰자마자 순식간에 나를 떠나 이미지의 산비탈과 이미지의 풀밭을 넘어, 관념의 오솔길을 지나고 혼돈의 터널을 통과하여 자신의 갈 길로 가버리는 불안한 말을 이용해서. 나는 인상들을 붙잡는다. 이런 일을 해봐야 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에게는 그 무엇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쓰기는 나를 안정시킨다. 그것은 호흡곤란환자에게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과 같다.(571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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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내가 쓰는 글은 '나를 떠나 이미지의 산비탈과 이미지의 풀밭을 넘어, 관념의 오솔길을 지나고 혼돈의 터널을 통과하여 자신의 갈 길로 가버리고' 만다. 그렇게 내곁을 떠나버리는 글을 붙잡고 있는 것만큼 소용없는 짓이 있을까. 내가 한 순간 느꼈던 인상, 짧은 순간 나를 사로잡았던(사로잡았다고 착각했던) 것들을 글로 기록하는 것만큼 허망한 것이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페소아가 말했듯, 호흡곤란환자에게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음을 증명해 주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아무 소용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글을 씀으로써 나는 안정이 되고,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대단한 무엇이기 때문이 아니다. 계속 말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 소용이 없는 짓을 하는 아무 소용없는 사람일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는 이 무의미한 생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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