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서로 연관되어 있거나 연관되지 않은 채로

시월의숲 2016. 5. 14. 18:52

나는 결코 잠을 자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살면서 꿈을 꾼다. 아니 살면서 잠 속에서 꿈을 꾼다. 잠은 삶이다. 내 의식은 중단이 없다. 잠을 자지 않는 한 혹은 잠이 깊이 들지 않는 한 나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감지한다. 그리고 정말로 잠이 들자마자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는, 서로 연관되어 있거나 연관되지 않은 채로 영원히 펼쳐지는 그림이다. 그림들은 항상 외부세계에 속하는 척한다. 내가 깨어 있을 때 어떤 그림들은 인간과 빛 사이에 자리 잡고, 내가 잠들었을 때 어떤 그림들은 환영과 가시적인 어둠 사이로 가서 자리 잡는다. 그런 상태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내가 깨어 있을 때 정말로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고, 내가 잠이 드는 순간이 깨어나는 순간이 아니라고도 확실히 말할 수 없다.(573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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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속에서 나는 깨어 있고, 깨어 있는 동안 나는 잠 속에 있다. 어떤 몽롱함이 나를 지배한다. 대기는 눈부신 햇살로 가득하고, 짙은 아카시아 향기 속에서 장미는 붉은 눈을 뜬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오랫동안 망설였고, 피곤은, 늘 그렇듯 나를 내가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어떤 의심과 음모, 언어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 때로 믿을 수 없이 잔인하게 느껴졌으며, 그나마 있던 사람에 대한 기대(그런 것이 있기나 했던가?)가 무참히 꺾이는 경험 속에서 나는 무작정 달아나고 싶었다. 왜 어떤 이들은 대화를 하지 못하는가. 왜 어떤 이들은 일부러 사람들을 위협하고 협박하는가. 왜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다른 이들을 의심하고 몰아세우며 거짓된 말을 퍼뜨리는가. 그래서 그들이 얻는 것이 무엇이길래?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누가 옳고 그른지 알지 못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품는 깊은 적개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더구나 그런 적개심을 일부러 드러내고자 했다는 사실은 나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의문을 가지게 한다. 나는 모든 것을 잊고 싶다. 나는 다만 꿈꾸고 싶다. 살면서 꿈을 꾸든, 잠 속에서 꿈을 꾸든, 나는 잠 혹은 꿈이고 싶다. 나는 서로 연관되어 있거나 연관되지 않은 채로 꾸는 꿈이고 싶다. 오월의 햇살이고 싶고, 아카시아 향기이고 싶고, 장미의 붉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