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리고 타인들이 내게서 무엇을 원하든

시월의숲 2016. 4. 4. 22:28

나는 때때로 아무런 목적 없는 허망한 생각에 잠기며 나를 망각한다. 나를 보는 사람들은 나를 어떤 유형의 인간으로 구분할까. 내 목소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들릴까. 나는 다른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기억에 어떤 이미지로 남을까. 내 행동과 내 말, 겉으로 보이는 내 삶은 낯선 이들의 망막에 어떻게 해석되고 각인되는가. 나는 나를 외부의 시선으로 볼 능력이 없다. 우리 자신을 외부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거울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영혼, 시각과 생각의 다른 법칙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영화배우이거나 내 목소리가 음반에 녹음되는 입장이라 해도, 역시 나는 외부에서 본 내가 어떠한지를 알 수 없다는 사실만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리고 타인들이 내게서 무엇을 원하든 나는 오직 한자리에, 내 안에 있을 뿐이니까. 나 자신이라는 의식의 안뜰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채.(565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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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직 우리 자신의 내면만 알 수 있다는 사실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나는 나를 보는 사람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알지 못하며, 그들 또한 그들 자신을 보는 사람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를 외부의 시선으로 볼 능력이 없다. 만약 우리가 우리들의 모습을 외부의 시각으로 볼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는 자신들의 속물스러움과 혐오스러움에 스스로 미치거나 할 말을 잃어버릴 것이다. 전쟁이 사리지거나 혹은 영원히 지속되거나. 다른 종류의 영혼, 시각과 생각의 다른 법칙이란, 너무나 비관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한다고 해도 결코 보통의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상상속의 풍경과도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가지 생각을 잊으면 안된다. 나를 보는 사람들은 나를 어떤 유형의 인간으로 구분할까, 내 목소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들릴까, 나는 다른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기억에 어떤 이미지로 남을까, 내 행동과 내 말, 겉으로 보이는 내 삶은 낯선 이들의 망막에 어떻게 해석되고 각인되는지를 스스로에게 자꾸 묻는 밖에는. 내가 생각하는 내가 타인들이 생각하는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상기하는 수밖에는. 물음을 위한 물음이 아니라, 답이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을 구하기 위한 소용없는 물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