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인간으로 가득한 텅 빈 거리

시월의숲 2016. 3. 13. 23:15

나는 종종 이런 의문이 든다. 인간으로 가득한 텅 빈 거리를 한번이라도 적절한 관심을 갖고 관찰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말은 표현에서부터 어딘지 좀 익숙하지 않은 방식을 추구하는 듯하며, 실제로도 그렇다. 텅 빈 거리란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거리가 아니라 마치 텅 빈 거리인 듯이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는 거리를 말한다. 실제로 그런 거리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을 납득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당나귀만 아는 사람이라면 얼룩말을 상상하기란 불가능하겠지만.(563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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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없는 유령.

그들은 마치 발없이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유령과 같다. 시선은 서로를 통과해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하고, 마치 바람이 스쳐지나가듯 그렇게 타인들은 타인들을 지나친다. 내가 대도시에서 본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 그러했다. 내가 대도시만 가면 한없이 목이 말라서 물을 찾아야 했던 것도 모두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너무나도 식상한 비유여서 더이상 아무런 감흥을 남기지 못한다. 그러한 비유는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린 언어가 되었다. 하지만 페소아가 그보다도 더 오래전에 했던 말은 나에게 생생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인간으로 가득한 텅 빈 거리.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문장인가. 어쩌면 내가 느낀 이 감정은, 내가 실제로 대도시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긴, 어떤 피상적인 감상주의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갖 수식어와 알 수 없는 잠언투의 말에 질린 사람에게 페소아의 저 문장은 아주 원초적인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단어와 기교가 아닌, 익숙하고 단순한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에서 오는 새로운 느낌. 하지만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참견하기를 좋아하고, 누구나가 다 중매쟁이가 되며, 한 번 만난 사람이 내 친부모나 친형제보다도 더욱 부모와 형제가 되어버리는 이 이상한 공간에서는, 그리하여 누군가의 사생활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침범해 들어와 폭력을 가하는 이 무법지대에서는 어쩌면 발없는 유령이, 인간으로 가득한 텅 빈 거리가 너무나 간절할 수도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