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애정과 증오

시월의숲 2016. 6. 11. 15:12

타인의 애정만큼 부담스러운 것도 없다. 그것은 타인의 증오보다 더욱 부담스럽다. 왜냐하면 증오는 애정만큼 의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증오는 불쾌한 감정적 충동이므로, 증오를 느끼는 사람은 무의식중에 증오를 억제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오 역시 애정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둘 다 우리를 쫓아다니며, 우리를 엄습하고, 우리를 혼자 놓아두지 않는다.

모든 일들을 소설의 내용인 듯 체험하면서 삶을 휴식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이상적이다. 내 마음의 격정을 책처럼 읽고, 그것에 대한 내 경멸을 살아가는 것이다.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에게 소설 주인공의 온갖 모험은 그 자체로 충분히 흥분되는 일이며 심지어 그 이상이기도 하다. 그것은 주인공의 모험인 동시에 우리들 자신이 겪는 모험이기도 하므로. 진짜 맥베스 부인과 실제 사랑을 나누는 것보다 더 큰 모험은 없다. 그런 사랑을 체험한 자는 이 삶에서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고, 오직 휴식을 취하고만 싶을 것이다.(581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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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과 증오. 우리는 흔히 애증의 관계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격정적으로 증오하는 자는 내면에 격정적인 애정 또한 품고(인정하기는 싫겠지만) 있다.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증오할 수밖에 없는 관계. 애증의 관계. 우리는 그것을 남녀간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부모 자식간, 형제 자매간, 친구 등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경험하거나 목격한다. 우리가 살면서 인간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애정과 증오의 관계는 끈질기게 '우리를 쫓아다니며, 우리를 엄습하고, 우리를 혼자 놓아두지 않는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다면, 페소아가 말한 것처럼, 소설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의 격정을 책처럼 읽고, 그것에 대한 내 경멸을 살아가는 것'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모르겠다. 애정과 증오의 삶 속에 몸을 푹 담그고 그것을 열심히 사는 것과, 거기서 한 발 물러서서 모든 것을 달관한 채 조용하고 고요한 삶을 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나는 그저 소설 속 인물을 바라보듯이 그렇게 나 자신을 외부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나라는 인간을 좀 더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삶의 모순이나 부조리, 비밀들 또한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