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녀는 자주 잊었다,
자신의 몸이(우리 모두의 몸이) 모래의 집이란 걸.
부스러져왔으며 부스러지고 있다는 걸.
끈질기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다는 걸.
*
한강의 최근 소설 <흰>을 읽고 있는데, 저 문장이 나왔다. 나는 저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어쩌면 평범하고, 누구나 다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를, 아니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저 문장들을. 처음에는 마지막 문장에 눈길이 갔는데, 자꾸 읽을수록 첫 문장에 눈길이 머문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 모래의 집이란 걸, 부스러져왔으며 부스러지고 있다는 걸, 끈질기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엄연한 사실을 자주 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우리가 흘러내린만큼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것일까, 그저 흘러내리고 흘러내려 종래에는 텅 비워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 것일까. 부스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은 얼마나 쓸쓸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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