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떠날 때

시월의숲 2016. 8. 30. 22:38

하루아침에 뜨겁고 습기찬 대기는 온데간데 없고, 기온이 뚝 떨어져 서늘한 날씨가 되었다. 일을 마치고 사택에 들어와 앉아 있으면 엉덩이에 땀이 찰 정도로 더운 날씨였는데, 갑자기, 급작스럽게, 날씨가 변하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요즘엔 신기한 일이 많다. 날씨의 믿을 수 없는 변화도 신기하고, 내 마음 속 소란스러움도 신기하고, 일이 갑자기 많아진데 따른 그 정신없음에 신기하고, 사람들과의 대화도 신기하다. 특히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아무도 알 수 없으며, 결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내 마음 속 소란에 나조차 우습고, 이해할 수 없어서, 정말 신기하기까지 한 심정이었다. 나는 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는가. 나는 왜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일에 자꾸만 신경을 쓰는가.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을 일에 애를 태우는가.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신기하여, 나는 마치 지금껏 살아온 내가, 나 자신이, 하루 아침에 내가 아닌 것이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이제 뜨거운 더위도 한풀 꺾이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 때, 좀 더 차분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좀 더 완벽하게 속이거나, 좀 더 완벽하게 드러내거나. 어쩌면 내가 이곳을 떠날 때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떠날 때는 이미 지났는지도. 떠날 때를 놓쳤기 때문에, 그 우유부단함 때문에 내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해서 무엇할 것인가. 나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고, 때가 되면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날 것이다. 절대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내 어리석은 마음은 이곳에 남겨두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 것이다. 그때까지 정신없이 일하는 수밖에는 없다. 일에 내 몸과 마음을 파묻고 떠날 때를 기다릴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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