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단념하는 인간

시월의숲 2016. 11. 24. 01:11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든 인간의 고집스러움과 비타협적인 성향은 아마도 무언가를 오래 고집하였거나, 수많은 시행착오로 인하여 한가지 생각이 고착화된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수없이 단념하였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그러니까 수많은 패배와 질투, 오해와 아집으로 인하여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단념하게 되고, 그렇게 단념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사람은 눈에 띄게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여 결국 타인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아닌가. 밖으로 열린 문을 스스로 닫게 되는 것은 아닌가. 자발적인 고립의 상태로 나아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일본 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좀 더 침울해졌고, 말하는 횟수가 줄어들었으며, 잘 웃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힘들어졌고, 누군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 두려워졌다. 여행이 주는 일상의 활력은 내겐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이건 가중된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만은 아니다. 내 여행은 일종의 단념의 여행이었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확실히 알 것 같다. 나는 수없이 단념하고, 또 단념하였으나, 아직도 단념할 것이 남아 있는 듯 가슴이 아팠다. 차라리 혼자 떠난 여행이었으면 좋았으리라.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거리를 걸었다면 오히려 더 나았을지도.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아직 단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가? 수없이 단념한 것이 아니라 수없이 기대했던 것은 아닌가? 수없이 기대했기 때문에 수없이 단념한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같은 말인가? 그렇다면 계속 단념하는 수밖에. 그럴 수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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