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무심하게 날카로운

시월의숲 2016. 12. 5. 23:42

나는 지금껏 인간관계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친절하고, 배려심 있으며, 늘 따뜻하게 사람들을 대한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다 착각이고, 실은 질투와 시기심이 많고, 기분에 따라 상대방을 대하며, 그리하여 결국 인간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원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되고 싶은 내 마음일 뿐이고, 실은 전혀 반대였던 것이다. 나는 사람들과 친해지면 질수록 자꾸만 기대하게 되고,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면(당연히 모든 기대는 충족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밀어내고, 차갑게 대하고, 스스로 파놓은 감정의 구덩이에에 빠진채, 스스로에게 화를 낸다. 나는 하루키의 소설 속 인물들처럼, 어딘가 심각하게 손상된 채로 자라왔는지도 모른다. 어디가 어떻게 손상된지도 모른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자라온 것이다. 삶은 그런대로 무심히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결정적인 어떤 순간, 숨겨왔던 칼날을 들이밀며 나를 공격한다. 그렇게 무심히, 무방비한채로 나는 상처받고, 피 흘리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마치 다자키 쓰크루가 어느 날 친구들로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절교 선언을 당했듯이. 다자키 쓰크루는 그렇게 추방당한 채로 살아가다가, 돌연 자신이 왜 그런 상태에 놓였어야 했는지, 왜 친구들로부터 알 수 없는 절교를 당해야만 했는지 알기 위해 순례를 떠난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도 다자키 쓰크루처럼 어떤 외부적인 원인이 있어서 지금과 같은 감정 상태에 빠진 것인가? 내가 해야하는 순례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순례여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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