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꿈의 개론

시월의숲 2016. 12. 12. 23:22

나는 독서만한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거의 읽지 못한다. 책은 꿈의 개론인데, 자연스럽게 그리고 얼마든지 꿈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에게 개론은 필요가 없다. 독서란 나에게는 자신을 망각하는 일인데, 책을 읽고 있으면 내 이성이나 상상력이 논평을 다는 통에 책의 흐름이 자꾸만 방해받곤 했다. 그래서 몇 분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 자신이 책을 쓰는 형국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쓴 것들은 책의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693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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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거의 책을 읽지 못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내 신경은 온통 업무에 가 있는데, 그렇다고 업무를 효율성 있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성격이, 쓸데없이 고민하고, 걱정하는데서 비롯되는 내 성격 때문에, 책에 집중을 못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럴수록 책 속에 파묻히고 싶지만, 그래서 잠시나마 걱정과 근심을 잊어버리고 싶지만, 그게 또 잘 안된다. 그래도 간간히 책을 읽기는 하는데, 요즘 읽고 있는 책의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것은, 그 책에 흥미가 없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다른데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 해당되는지도. 아무튼 요즘은 책을 거의 읽지 못하고, 쓸데없는 생각으로 시간을 떼우고 있다. 그래서 좀 우울하다. 아마 연말이 지나고 내년초까지는 바빠서 정신이 없을 것 같다. 단편 소설 하나를 읽는 시간조차 견딜 수 없다는 건, 엄청난 불행이 아닌가.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 쓸데없는 근심과 걱정은 접어두고 책을 읽어야지. 나 또한 독서만한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 물론 페소아처럼 꿈과 대화를 나누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페소아는 '내가 쓴 것들은 책의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고 했지만,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페소아의 글을 지금 내가 읽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페소아가 쓴 꿈의 개론이다. 나는 그 꿈을 통해 페소아를 만난다. 독서의 즐거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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