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렇다, 삶이 고통이라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리고 삶을 생각하는 것 역시 고통이 아니다. 진실은 이렇다. 우리가 고통을 진짜 괴로운 것으로 생각할 때만 고통은 진짜 괴로운 것이 된다. 그저 가만히 내버려둔다면, 어느 날 고통은 우리를 찾아왔던 것처럼 그렇게 슬쩍 우리를 떠나버릴 것이다. 생겨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사라져버릴 것이다. 모든 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고통 역시 마찬가지다.(704~705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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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고통 역시 마찬가지란 사실도. 하지만 어찌 고통을 ‘진짜’ 괴로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진짜 괴롭기 때문에 그것을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괴롭지 않은 고통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고통을 그저 가만히 내버려둔다는 것은, 그것이 어느 날 우리를 찾아왔던 것처럼 그렇게 슬쩍 떠나버린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우리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가? 아는 것과 실제로 느끼는 것은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 나는 아직도 진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모든 의문과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랑도, 고통도, 아픔도, 눈물도, 기쁨도, 그 어떠한 것도 결국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는 것을.(2017.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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