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어느 날 우리를 찾아왔던 것처럼 그렇게

시월의숲 2017. 2. 24. 18:24

, 그렇다, 삶이 고통이라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그리고 삶을 생각하는 것 역시 고통이 아니다. 진실은 이렇다. 우리가 고통을 진짜 괴로운 것으로 생각할 때만 고통은 진짜 괴로운 것이 된다. 그저 가만히 내버려둔다면, 어느 날 고통은 우리를 찾아왔던 것처럼 그렇게 슬쩍 우리를 떠나버릴 것이다. 생겨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사라져버릴 것이다. 모든 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고통 역시 마찬가지다.(704~705,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

모든 것이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고통 역시 마찬가지란 사실도. 하지만 어찌 고통을 진짜괴로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진짜 괴롭기 때문에 그것을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괴롭지 않은 고통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고통을 그저 가만히 내버려둔다는 것은, 그것이 어느 날 우리를 찾아왔던 것처럼 그렇게 슬쩍 떠나버린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우리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가? 아는 것과 실제로 느끼는 것은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 나는 아직도 진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모든 의문과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랑도, 고통도, 아픔도, 눈물도, 기쁨도, 그 어떠한 것도 결국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는 것을.(2017. 2. 12.)

 

 

'불안의서(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인생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  (0) 2017.03.17
정신의 명료함과 논리성을 더 이상 확신할 수 없는  (0) 2017.03.09
어떤 응시  (0) 2016.12.25
꿈의 개론  (0) 2016.12.12
다른 꿈의 풍경  (0) 2016.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