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어떤 응시

시월의숲 2016. 12. 25. 22:43

세상에는 우리가 아는 그 어떤 법칙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매일 일어난다. 그들은 매일같이 진술되고 망각되는데, 그들을 데려온 불가사의가 그들을 다시 데려가 비밀을 망각으로 바꾸어버린다. 설명될 수 없는 사물은 반드시 망각으로 귀결된다는, 바로 그 법칙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태양빛 아래서 순환한다. 하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어떤 낯선 것이 그늘 속에서 우리를 응시한다.(702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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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에 대해서 생각한다. 분명히 존재한다고 느껴지거나 감지되는 어떤 세계. 그것은 무의식처럼, 우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어쩌면 우리의 모든 것들을 뒤흔들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좀처럼 알지 못하는데, 그것은 '그들을 데려온 불가사의가 그들을 다시 데려가 비밀을 망각으로 바꾸어'버리기 때문이다. 태양빛 아래 순환하는 세계의 이면에 숨어 있는 어떤 낯선 것이 그늘 속에서 우리를 응시한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나는 가끔 그 시선을 느낀다. 그것은 내가 그 어떤 법칙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인가. 혹은,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가 있다고 믿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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