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차피 헤어질 사람,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

시월의숲 2017. 1. 3. 00:20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질 사이인데 뭘. 하긴, 지금이야 이렇게 같은 직장 동료라서 만나고 있지, 또 언제 만날 줄 알고. 한 번 헤어지면 영영 끝이지 뭐. 몸이 멀어지면 자연스레 마음도 멀어지게 되어 있지. 다른 곳에 가서도 자주 연락할 것 같지만, 막상 새로운 일터에서 생활하다보면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이제 더이상 생각나지 않거나, 생각나더라도 한 두 번 연락하고는 그걸로 끝이겠지. 우리는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언제 또 볼 사이겠느냐는 말. 그 말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 같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는 말인지, 그래서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잘 지내자는 취지의 말인지, 아니면, 어차피 헤어질 사이니까 그리 마음 줄 필요도 없고, 마음 줄 일도 없고, 그러니 적당히 내 할 일 하다가 헤어지면 그 뿐이라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인간 관계에 대한 가벼운 냉소의 표현으로 들리는 그 말을, 우리는 맞장구를 치며 공감을 표했다. 나도 그 말에 어느정도 수긍을 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하긴 했지만, 어쩐지 석연찮은 기분이 자꾸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만나 이야기하고 있는 이 순간은 도대체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닌 말들을 나누며, 아무것도 아닌채로 그저 시간만 죽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헤어지면 그만일 우리들이 만나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진지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일까. 어쩌면 그들은 진지라는 말에 굉장히 어색해하거나 혹은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한다고? 그건 가벼운 술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일 때문에 만나는 직장동료가 술을 마시며 진지하게 이야기 할 게 뭐가 있다는 말이야? 그저 직장 상사의 험담이나 하는게 고작이지.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이 다 진실일지라도, 그래서 우리들의 만남이 바람이 불면 훅 날아갈듯 너무나도 가벼운 것일지라도, 그 가벼움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을 나는 떨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들이 하는 말은 인간관계에 대한 보편적인 말이 아닌가?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지지 않을 사이가 어디 있으며, 한 번 헤어진 후 다시 볼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 것이며, 시간이 지나서까지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사이가 얼마나 될 것인가. 우리는 모두 그런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것은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 아니, 진실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 말이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더욱 잘 지내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질 사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앞서 말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우리가 또 언제 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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