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오랜만입니다, 겨울

시월의숲 2017. 1. 14.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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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숙직, 이라는 걸 하고 있다. 텅 빈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는 건, 뭐랄까, 설명하기 어려운 오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예전에 읽었던 어떤 글(김도언의 수필이었던가?)에서 저자는 텅 빈 사무실에 홀로 있을 때의 소회를 상당히 인상적으로 표현했던 거 같은데,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당분간 인터넷이 되지 않는 곳에서 살게 되었으므로, 내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 예전보다 더딜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인터넷을 연결하기 어려운 산골 오지에 살게 된 것이 아니라, 연결하지 않은 곳(굳이 연결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곳)에서 살게 된 것이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지만, 어쩐지 당분간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는 그동안 아무 의미도 생각도 없이 습관적으로 인터넷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당분간은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계와는 단절한 채, 그동안 못 읽었던 책이나 읽으면서 보내야겠다. 작년까지(!)는 바쁘다는 핑계로 못 읽었던 책들을 하나씩 읽어나가는게 올해 내 소망이라면 소망이다. 그리고 작년보다는 좀 더 많은 책을 읽는 것 또한. 물론 앞으로도 그리 여유있는 생활을 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낫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본다.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면, 내 한심함에 웃음이 다 나오지만, 뭐 천천히 읽어나가면 되지 않을까. 

 

 

*

어제는 그저께보다 좀 더 추웠고, 오늘은 어제보다 좀 더 춥고,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추울 예정이라고 한다. 이제 좀 겨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동안은 겨울치곤 포근해서 마치 가을처럼 느껴졌으니. 남자는 남자다워야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도무지 남자다운 것이 무엇이고, 여자다운 곳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 말을 제일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계절만은 예외가 아닐까. 그러니까 봄은 봄다워야 하고, 여름은 여름다워야, 가을은 가을다워야 하며,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는 말. 물론 춥고 배고픈 자의 겨울은 한없이 따뜻했으면 좋겠다.

 

 

*

마음을 정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당연히 알 수 없었겠지. 예전에는 이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 신기하고도 신기한 일이다. 요즘 나를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하며, 측은하기도 하다. 마음이라는 건,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걸 아는 것과는 달리, 그 자체로 이미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이 또한 슬프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란다.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이 겨울처럼 차가워지기를. 냉철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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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이 겨울에 인사를,

마치 처음 만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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