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정신의 명료함과 논리성을 더 이상 확신할 수 없는

시월의숲 2017. 3. 9. 22:06

정신 나간 인간들이 참으로 명료하고 논리정연하게 그들의 미친 생각을 자기 자신과 타인들에게 그럴듯하게 정당화시키는 것을 목격한 뒤로, 나는 내 정신의 명료함과 논리성을 더 이상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713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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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태극기가 보기 싫어진다. 내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살아갈 내 나라의 태극기가 보기 싫어지다니! 이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또한 태극기에게 얼마나 모욕적인 일일 것인가. 페소아의 저 문장이 요즘의 상황을 참으로 적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통쾌하면서도 서글프다. 나름의 명료함과 나름의 논리성. 그건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가지고 있고 또 누구나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다른 누군가의 생각을 억압하고 짓누르며, 왜곡하고, 날조하는데까지 나아간다면, 그건 사회가 병들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부드러운 강함,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아니라 북한 뉴스에 나오는 격앙된 음성의 앵커처럼, 날이 선 강함, 소란스러운 강함 혹은 야만적인 강함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진저리가 난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그런 것들에 휘둘린 역사가 있지 않았던가. 정신의 명료함과 논리성을 더 이상 확신할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름의 명료함과 나름의 논리성을 넘어선, 그 보다 더 깊은 곳, 더 근원적인 곳에 자리한 진실을 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대체로 고통을 동반한다. 우리가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며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고통쯤은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진실을 대면하는 데에 따른 댓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