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내 인생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

시월의숲 2017. 3. 17. 00:45

내 인생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는, 음지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은밀한 형태이기는 하나, 그 무엇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느낄 수가 없다는 점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랑하고 미워할 줄 알며, 다른 사람들처럼 두려움을 느끼거나 감동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나의 사랑도 미움도, 나의 두려움도 감동도, 원래 모습과는 다르다. 어떤 특정 성분이 결여되었거나, 혹은 애초에 그것들에 속하지 않는 어떤 특정 성분이 들어가 있다. 어느 모로 보나 틀림없이 뭔가 다르고, 실제로 내가 가진 느낌 역시 삶 자체와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않는다.(714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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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종종 느끼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이와 비슷할까. 나와 내 삶, 내 삶과 나를 둘러싼 세계가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부자연스럽게 얽혀 있다고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일까. 그러니까 그것은, '어떤 특정 성분이 결여되었거나, 혹은 애초에 그것들에 속하지 않는 어떤 특정 성분이 들어가' 있기 때문은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내가 느끼는 이 부조화는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가. 어딘가 굴절된 채로, 어딘가 어긋난 채로, 어딘가 손상된 채로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한 번 어긋난 뼈를 제 때 바로잡지 못하면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 아버지의 팔이 생각난다. 의사는 말했다. '어긋나게 붙어버린 뼈를 다시 붙이지는 못한다. 시간이 너무나 많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인공 관절을 넣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조차 당신 아버지의 고통을 완벽하게 덜어주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몇 개의 눌린 신경을 옮기는 수술을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으로 보인다.'라고, 세상의 모든 무표정을 모아놓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삶도 괜찮은 것일까. 그것은 페소아가 말한 대로 비극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