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書)

미묘하고 흐릿한 고통

시월의숲 2017. 4. 15. 21:48

내면의 고통이 있는데 그것이 너무도 미묘하고 흐릿하여 우리는 그 고통이 몸에 속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 영혼에 속하는 것인지, 또는 삶의 덧없음 때문에 느끼는 불안인지 아니면 위장인나 간 또는 뇌 같은 우리 몸 속 신체기관의 심연에서 솟아나는 불쾌한 기분 탓인지 구별할 수 없다. 불안하게 침체되어 있던 마음속 앙금이 한번씩 휘저어질 때마다 나의 정상적인 인식은 너무나도 탁하게 변해버린다! 존재해야 한다는 모호한 메스꺼움이 치밀 때마다 지독하게 괴롭지만, 그것이 단순한 권태인지 아니면 정말로 구토가 시작된다고 신체가 경고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742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봄날의책,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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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미묘하고 흐릿한 고통.


그것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느껴지는 고통이리라. 분명히 존재하는 고통이라는 것이,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 알 수 없다는 건 얼마나 모순적인가. 우리는 고통을 느끼지만,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또다른 고통에 빠진다. '고통은 영원하다'고 반 고흐는 썼다. 영원한 고통 속에서 무엇 때문인지, 왜 그래야만하는지 모른채 우리는 고통을 느끼고, 고통에 빠지고,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삶이 고통이라는 것은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