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론 마라스코 · 브라이언 셔프, 《슬픔의 위안》, 현암사, 2012.

시월의숲 2017. 4. 18. 01:14

우리는 슬픔에 젖으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슬픔은 우리를 적신다. 슬픔은 아무런 경고도 없이 삶에 틈입한다. 그럴 때 우리는 기습 공격을 받은 것처럼 당황한다.(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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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는 절대적인 것이 없다. 쉽게 견딜 비법도 없고, 빠져나갈 구멍도 많지 않다. 슬픔처럼 개인적인 경험을 이해하고 나면,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사람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슬픔을 이해하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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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애도와는 다르다. 슬퍼하는 이들은 자신을 내리누르는 그 모든 결코라는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삶을 재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슬픔의 무게를 짊어지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루이 암스트롱에게 재즈를 정의해달라고 한 적이 있다. 루이 암스트롱은 "재즈가 뭔지 물어야 한다면 당신은 영영 재즈를 알 수 없을 겁니다"라고 답했다. 슬픔도 마찬가지다. 당신에게 슬픔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면 그건 슬픔이 없다는 이야기다. 슬픔이 당신의 현실이라면 슬픔 자체가 말해줄 것이다.(26~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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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들을 잃는 일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다. 그것들이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가장 깊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관련이 있는 사소한 것들을 가장 많이 알고 있다는 뜻이다.(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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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사소한 것들이다. 그런데 슬픔은 그 사소한 것들을 비틀어서 떼어내 버린다. 죽음은 사소한 것들을 베어내 버리고 난 뒤 그 자리를 공허감 대신 인식 가능한 고통의 무게로 채운다. 고통은 엄연한 실재다. 그래서 고통은 공간을 채운다. 우리는 "내 안에 고통이 있어요"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난 고통에 빠졌어요"라고 한다. 고통에 빠져 있을 때는 고통이 당신의 전 우주만큼이나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슬픔은 저항할 수 없는 고통의 실체다.(37~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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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인내심이 부족해서 일이 되어가는 대로 놔두기보다는 당장 바로잡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엄마는 하루 종일 울적해하며 서성거렸다고! 심지어 머리도 빗지 않았단 말이야! 엄마를 이대로 나둬선 안 돼!" 진실을 말하자면, 엄마가 잭 다니엘 한 병과 기관단총을 든 채 방 안에 진을 치고 있지 않는 한 즉각적인 개입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게다가 상실감으로 인해 너무나, 너무나 슬프다는 이유만으로 엄마가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끽 해서는 안 된다.(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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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이야기하라.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슬픔을 말하라. 빈 뒤뜰이나 샤워커튼에 대고 슬픔을 토로하라. 혼자 있는 차 안에서, 숲 속을 걸으면서 슬픔을 큰 소리로 외쳐라. 이것이 슬픔을 해소하는 법이다.(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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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순간에는 정직해지기가 어렵다. 정직해진다고 해서 이미 일어난 슬픔과 비극이 완화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 패닉은 줄여준다. 순간의 무섭고 혹독한 시련을 이겨내려면 엄청난 용기가 있어야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용기를 "강요된 품위"라고 정의한 것은 유명하다. 그러나 슬픔에 관해서라면, 아마도 시인 필립 라킨의 정의가 더 적절할 듯하다. 그에게 용기의 의미는 사람들을 두렵게 하지 않는 것이다.(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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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슬픔과 결부된 이 이상한 수치심, 사랑하는 이를 잃어 모욕을 당한다는 수치심에서 해방되길 바란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용서에 이르게 하는 것도 슬픔의 중요한 역할이다. 인간이 피 흘리고, 뼈가 부러지고, 눈물 흘리며, 똥을 싸다 소멸하는 육체의 주인임을 용서하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막지 못하고서, 바로 그 사람이 없다고 마음의 갈피를 못 잡는 스스로를 용서하라.(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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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때는 지킬 수 있는 작은 약속이 지킬 수 없는 큰 약속보다 낫다. 생의 기본적인 평안에 대한 신뢰는 밧줄에 매달려 안간힘을 쓸 때 조금씩 회복될 것이다. 신뢰는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갑작스럽고 파괴적으로 허물어지지만, 회복될 때는 그와 정반대로 천천히, 조금씩 회복된다. 신뢰의 상실은 큰 것 같고, 그 회복은 작은 것 같다.(118~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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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별의 슬픔을 겪는 사람에게 단정하게 처신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가혹할 수 있다. 유머를 통해, 진공처럼 모든 것을 에워싸버리는 슬픔의 공간 밖에도 하나의 세계가, 심지어 기쁨이 있음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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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폭풍우 한가운데 있을 때 반드시 떠올려야 하는 것들이 있다. 다시 유머를 즐기게 되리라는 것, 삶은 계속되리라는 것, 시계는 다시 똑딱똑딱 가고, 별들이 다시 보고 싶어지리라는 것, 그리고 숨 막히게 하는 슬픔의 미덕과 대결을 벌이는 중에도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기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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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혼자가 되면 휴식을 갈망하는 만큼 불안을 느낄 것이다. 조용히 혼자 있을 곳을 찾아내자마자 마음속에서는 불쾌한 영상들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휴식에 대한 모든 희망이 꺾인다. 그러므로 혼자 있으면서도 외롭지 않은 환경을 찾아야 한다. 카페가 구원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작가 노엘 라일리 피치는 "카페는 혼자 있고 싶어면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주위에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이들에게 적당한 곳"이라고 했다. 공원이나 쇼핑몰의 푸드코트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서도 번거롭지 않은 곳들도 괜찮다. 혹시 근처에 대학교가 있다면 대학 교정이나 대학가도 좋다. 젊음의 활기와 유쾌함이 있는 동시에 인생이 자신에게 강펀치를 날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니 말이다. 가장 좋은 것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내면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과, 말하거나 행동할 필요 없이 그냥 있으면 되는 장소다.(169~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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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범한 삶에서 너무도 많은 진실을 외면한다. 슬픔이 주는 몇 안 되는 선물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슬픔을 겪고 나서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더한 현실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이 누구인지, 사람들이 사랑해주는지 아닌지, 미래의 모습은 어떨지 같은 것들은 얼마든지 거짓으로 말할 수 있다. 교묘하게 속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슬픔은 속일 수 없다. 사랑하는 이는 영원히 가버렸고, 그것으로 끝이다.(182~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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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를 꾀하는 성향의 저변에는 인간의 근원적인 진실이 있다. 인간은 타인들로부터 안정감을 얻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위기의 순간뿐 아니라 인간의 삶 전반에 해당되는 진실이다. 다른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안을 받을 수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어떤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연대는 이루어진다.(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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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반복되는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 역시 도움이 된다. 그날그날의 평범한 의식들을 따르다 보면 마음이 정연해지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것들이 죽음과 슬픔 같은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좀 더 견딜 만하게 해주는 소소한 알려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작은 야던법석들이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를 과소평가한다.(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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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별을 겪고 슬픔에 젖은 모든 사람들은 틀림없이 "당신이 없는 난 누구지?"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하면서 자기 이야기는 되살아난다. 슬픔은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자신이 사랑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며, 자신이 사랑한 누군가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또 그와 함게한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그 없이 살아야 하는 자기 삶에 대한 이야기다. 슬픔은 자기가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러나 공저자가 있다. 사랑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해방된 감정들이 계속 제 목소리를 내려고 할 테니 말이다. 이 사실에 익숙해져라.(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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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슬픔과 기쁨은 모두 병원과 인간관계와 삶의 일부로, 서로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슬픔은 떠난 사람을 사랑해기에 치러야 할 계산서다. 사별의 슬픔으로 입는 상처는 두 사람이 나눈 사랑의 기쁨만큼 깊다. 에밀리 디킨슨의 말을 빌리면 애통해하는 모든 이들의 운명은 "사랑과 대비되는, 더 큰 고통을 깨닫는 것이다."(3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