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정지돈, 《내가 싸우듯이》, 문학과지성사, 2016.

시월의숲 2017. 1. 22. 16:54

장은 어리석은 질문이야말로 유일하게 가치 있는 질문이라고 믿었다. 어리석은 질문에는 답이 없거나 틀린 답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이로써 질문은 질문이 아닌 의지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일한 이유로, 나는 그런 질문이 세계를 망쳤다고 생각했는데(그러므로 질문을 가장한 의지는 사라져야 한다고) 장은 그렇기 때문에 그런 질문만이 세계를 구원할 힘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눈먼 부엉이」,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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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무 말이나 하고 싶지만 아무 말이나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했다. 에리크는 자신도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모두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게 글을 쓰라고 했다. 글을 쓰면 삶이 조금 더 비참해질 거라고, 그러면 기쁨을 찾기가 더 쉬울 거라는 게 그의 말이었다. 나는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고 했다.(「눈먼 부엉이」,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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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가장 관심을 가진 주제는 이상과 허무의 관계였다. 장이 말했다. 21세기는 허무의 시대다. 그러나 가짜 허무의 시대다. 그는 진정한 이상주의자만이 진정한 허무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진정한 이상주의자도 아니었고, 진정한 허무주의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전정한 주의자라는 게 진정으로 존재할 수나 있긴 한가. 그런 것에 누가 관심을 가지는가. 장은 옛날 책과 영화를 너무 많이 봤고 어느 순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역사가 끝났다는 말은 장의 입장에선 헛소리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세기에 살고 있었다."(「창백한 말」, 75~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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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있을 때 순조로웠던 둘의 사랑은 서울에 오자마자 산산조각 났다. 유학생은 알랭을 철저히 친구로 대했고, 알랭은 그토록 변한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알랭에게 이렇게 말했다. 파리에서의 나와 서울에서의 나는 다르다. 파리에서의 너와 서울에서의 너가 다른 것처럼. 알랭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유학생은 계속해서 말했다. 인간은 변화하는 존재다. 시간과 공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존재이지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고 말이다. 알랭은 유학생의 말이 터무니없는 궤변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쟀든 그의 말대로 그는 변했기 때문에 그에겐 그게 진실이었다. 알랭은 자신이 시간과 공간의 파도에서 낙오된 바위처럼 느껴졌다. 변하지 않았기에 소외된 존재.(「미래의 책」, 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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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의 머릿속에 사랑의 매커니즘은 문학 행위와 동일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연결되어 있으나 동시에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독서를 하며 작가를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책을 통해 전혀 다른 의미의 이해로 저자와 연결된다. 알랭에게 책이란 사랑이었다. 책을 통해 작가와 독자가 연결되는 것처럼 사랑을 통해 개개인이 연결되는 것이다. 우리는 책 - 사랑이라는 매개가 없으면 닿을 수 없었다. 우리는 책 - 사랑이란 매개를 통해서만, 그것이 만들어낸 공간 속에서만 서로를 느끼고 만지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조차 존재하지 않으리라. 우리가 끊임없이 글을 쓰고 글을 읽는 것은 바로 그런 맥락이었다.(「미래의 책」, 114~1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