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슬픔의 습도

시월의숲 2017. 7. 16. 18:27

멀어지는 것들과 다가오는 것들, 에 대해서 생각했다. 비워지면 채워지고, 멀어지면 다가오며, 떠나가면 돌아온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는 하지만(정말 그런 것일까?), 아직까지도 나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 수 없고, 사람을 대하면 대할수록 더더욱 알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든다. 한 번 비워진 것은 채워지지 않고, 멀어지면 다가오지 않으며, 떠나가면 결코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그것만이 오로지 진실이고 그 외의 것들은 모두 거짓임을 나는 점차 깨달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비가 시도 때도 없이 퍼붓는 요즘이다. 오늘 아침에는 커다란 폭격기가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듯한 굉음이 났다. 나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는데, 옆에 누워있던 고모도 놀라서 나를 흔들었다. 그렇게 큰 천둥소리는 처음 듣는 것 같았다. 이후로도 몇 번씩 번쩍하는 빛이 비치고 몇 초 뒤에는 어김없이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비가, 마치 작심을 한 것처럼 사납고, 세차게 - 아니 이런 말로는 표현되지 않고 마치 내가 너희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때려 부술 것이다! 하며 돌진하는 미치광이처럼 - 그렇게 퍼부었다. 고모는 집에 가야 하는데 어떡하나 하며, 스마트폰으로 연신 일기예보를 들여다보았다. 고모가 집을 나서고 불과 한 시간이 채 안되어서 사납던 비가 온순한 양처럼 오더니, 결국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거짓말처럼.

 

여러모로 광폭한 계절을 지나고 있다. 더위는 마치 울분처럼 나를 짓누르고, 비는 무기가 되어 나를 때린다. 더운 여름이 이렇게 슬프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던가? 이 여름의 대기 속에는 높은 슬픔의 습도가 잠재해 있다. 고모의 방문으로 약속을 두 개나 취소해야 했는데, 그중에 첫 번째 약속이 아쉽게 느껴진다.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의 사진 속에는 온통 녹색의 푸름이 묻어 있었다. 여름의 냄새가 풍겼다. 울분과 슬픔의 여름이 아니라, 더위 속에서 살아 숨쉬는 풀과 흙의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짙은 녹음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 온통 푸른빛에 점령당한 사람들. 나도 그곳에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그런 풍경들. 더위를 잊게 하는것은 차가운 물뿐만 아니라 숲 속의 푸른 잎사귀일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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