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삼 년이라는 시간

시월의숲 2017. 6. 20. 00:05

며칠 사이 날이 많이 더워졌다. 며칠 전만 해도 건물 안에 있으면 그런대로 시원한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바깥은 말할 것도 없이 건물 안에도 더위가 느껴진다. 바야흐로 여름이 다가오는 것이다. 나는 추위보다 더위가 더 견디기 힘들지만, 그래도 여름이 와야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는 것이니, 그저 견디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내가 이곳에 온지도 이제 삼 년이 되었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사택에서 무려 삼 년을 산 것이다. 삼 년이라는 시간은 긴 걸까 짧은 걸까?  처음에 이 방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딱 혼자 생활할 수 있는 방과 자그마한 부엌, 그리고 화장실. 나는 이곳에서 삼 년이란 시간동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 밥을 해먹고, 빨래를 하고, 잠을 잤다. 그 평범한 일상들이, 그 평범한 일상들을 해낸 나 자신이 어찌보면 대단한 것 같기도 해서, 신기한 느낌마저 든다. 그 시간동안 나는 이 지역의 여러 곳을 다녔고, 이 지역의 상호와 길들, 풍경들을 제법 눈에 익혔으며, 그래서 마치 고향이 그런 것처럼 어떤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서야 이곳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물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지역의 풍경뿐만이 아니라, 이곳의 사람들을 또한 만났고, 이곳이 아닌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이곳에서 만나기도 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있던 고장이 규모로 보나 인구로 보나 더 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에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교류했다. 기쁠 때도 있었고, 슬플 때도 있었으며, 속상할 때도 있었지만 그러한 것들이 나를 좀 더 성숙하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니, 이건 내 바람 혹은 기대일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보다 속이 좁고, 너그럽지 못하며, 별거 아닌 일에 상처를 잘 받고, 조그마한 일에 화를 잘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건 나 스스로 나름 충격이었는데, 나는 도저히 내가 싫어하는 그런 기질들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처도 자꾸 받으면 익숙해지듯, 나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점차로 인정하게 되었다. 물론 인정하는 것과 실제로 화가 나는 것은 별개 문제지만. 어쨌거나 나는 나 자신을 좀 더 들여다 보게 되었고, 내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므로 그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그 문제를 내가 고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고쳐나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건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고 어쨌든 나 자신을 좀 더 알게 되었다는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내가 이런 소회를 밝히는 것은, 이번 주면 발표가 나는 인사 때문이다. 나는 한 곳에 오래도록 머물지 못하는 직업을 가졌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야만 한다. 나는 저번부터 생각해왔던 전보내신서를 제출했지만, 어디로 갈지 혹은 갈수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가지 못한다면 이곳에 얼마간 더 머물러야 할 것이고, 가게 된다면 이번 달 말까지만 머무를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내가 원한 곳으로 갈 수 없다면(어디 그런 곳이 있기나 한걸까?) 아무데나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그리 동요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곳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말의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그 또한 이 여름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기에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어쨌든 이번 주면 결판이 난다. 어떤 식으로든, 어떤 방향으로든. 그때까지 나는 내가 해야할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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