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떤 감상

시월의숲 2017. 7. 22. 23:35

공연을 본 소감이 어떻습니까?


그는 런던 첼로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고 출입구로 막 나오던 참이었다. 무려 스무 대의 첼로의 선율이 어우러지는, 매우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그는 공연의 여운을 품은 채로 공연장을 나오다가 리포터의 갑작스런 인터뷰 요청을 받게 되었다. 공연을 본 사람들의 소감을 인터뷰하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으며 말했다. 원래부터 첼로의 모든 것을 흠모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첼로만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본 것은 처음이었고, 그래서 당연하게도 무척이나 기대를 했으며, 다 보고 난 지금은 참으로 아름다운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약간 상기된 음성으로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첼로의 단독 연주나 혹은 첼로 협주곡을 좋아하지만, 첼로 스무 대로 연주하는 클래식 넘버들과 탱고, 재즈 등은 앞서 말한 것들과는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처음 우려했던 것도 첼로 스무 대가 모여서 도대체 어떤 하모니와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는데(첼로 단독 연주나 여타 협주곡들과는 어떻게 다를 것인가), 이번 공연은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고. 첼로는 왜 첼로여야만 하는가. 왜 바이올린이나 더블베이스 오케스트라는 없는가. 그런 생각을 하니, 왜 첼로 오케스트라여야만 했는지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바이올린이나 더블베이스의 연주 또한 첼로 못지않게 좋아하긴 하지만, 만약 바이올린이나 더블베이스만으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가 있어서 그들의 연주를 들었다면 어땠을까. 그게 좀처럼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오로지 첼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게 첼로 오케스트라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공연의 1부는 클래식이었고 2부는 탱고와 재즈곡, 대중음악 등을 편곡한 곡들을 연주했. 그는 2부도 좋았지만, 1부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특히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은 첼로 오케스트라가 보여줄 수 있는 장중함과 비극미, 우아함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었다. 아, 그리고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의 첼로 버전은  의외로 잘 어울렸고, 무척이나 멋있었다! 또한 중간중간 성악가들과 함께하는 연주 또한 좋았다고, 그는 말했다. 생전 처음 경험해본 방송사의 인터뷰가 무척 어색하고,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는 공연에서 느꼈던 점을 차근차근 말했고, 리포터는 그의 말을 가만히 경청해주었다. 그는 정말로 오랜만에 클래식 공연을 관람했고, 오랜만에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첼로를 배워볼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의 로망인 첼로를 그저 듣는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연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손에 잡히지 않는 아득히 먼 곳의 일처럼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열망을 가진 자신을 책망하거나 허황된 꿈이라고 비난하지 않았다. 그는 그 꿈을 마치 소중한 편지를 대하듯 그렇게 마음 속에 고이 접어 두었다. 한 사람을 이끌어가는 건 어쩌면 불가능해보이는 어떤 열망이 아니던가, 생각하면서.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고 그렇게 상상했다. 그러니까, 공연을 본 건 사실이지만 인터뷰를 한 건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인터뷰를 빙자하여 써놓은, 공연에 대한 감상은 진정 나 자신의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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