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고개를 들면 거기 바다가

시월의숲 2017. 8. 30. 23:28



2017. 8. 27. 포항 호미곶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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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갤 들면 거기 바다가 있었다. 우리는 바다를 따라서 이십 킬로미터 정도를 걸었다. 오로지 바다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길로만 걸었다. 바다는 단조로운 듯 보이다가도 미묘하게 다른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걷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날씨는 아직 더웠으나,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더위를 식혀주었다. 우리는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걷고 또 걸었다. 오로지 걷는 것만이 내 앞에 놓인 최선의, 유일한, 최후의 일인 것처럼. 이상하게도 저번에 춘천 소양강 둘레를 걸었을 때보다 좀 더 수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는 군대에서의 행군 이후 처음으로 장거리를 걸었기 때문인지, 주변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풍경에도 불구하고 제법 힘들었는데, 이번 호미곶은 그보다는 좀 덜 힘들었다. 이번이 두 번째 경험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바다의 둘레를 걸었기 때문에? 어쩌면 후자일 가능성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들면 거기, 바다가 있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