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을

시월의숲 2017. 9. 3. 21:22

한 가지만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반면에,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생각하기는 싫었습니다. 무엇보다 일에 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일은 일터에서만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일, 앞으로 해나가야 하는 일에 대한 생각 때문에 주말에도 편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뜨거운 여름을 지나 가을로 향해 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오로지 이 청명한 하늘에 대해서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불쑥불쑥 비집고 들어오는, 돌아보면 시커멓게 쓸어있는 곰팡이처럼, 잠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상한 음식처럼, 날아가 버린 파리처럼, 그렇게 불쾌하게, 끈질기게 달라붙는 일에 대한 생각은 어쩌면 나를 갉아먹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보이지 않게 녹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주말이든 새벽이든 가리지 않고 걸려오는 상사의 전화는 가히 나를 경악에 이르게 합니다. 나는 매번 경악하고, 그 경악스러움 때문에 또 경악합니다. 나는 그의 열정과 추진력에 박수를 보냅니다만, 그와 더불어 바로 그것 때문에 경악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내가 요즘 하는 생각입니다. 분명 나를 고통 속에 빠뜨리고, 음해하고, 시기하며, 골탕을 먹이려는 자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것이 내 피해망상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이것이 다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때로 한없이 억울한 것 같고, 한없이 바보스럽고, 한없이 어리석게 느껴집니다. 보이지 않는 운명이 나를 이리저리 굴리며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하길 바랍니까?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만 생각하고 싶습니다. 일할 때는 일 생각을, 일 하지 않을 때는 일 외에 다른 생각을 하고 싶습니다. 휴식을 취해야 할 주말에, 맑고, 밝고, 선명하며, 시원한 주말에 일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다는 건 정말 불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 지금 열심히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주말도 없이 뛰어다니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합니다. 하지만 나도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내 상황에서 하는 고민이라 생각해주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다 각자의 '상황' 혹은 '처지'라는 게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쉴 때는 모든 것을 잊고 그저 쉬고 싶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말입니다. 지금은 오로지 그 생각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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