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가을의 문턱에서

시월의숲 2017. 10. 12. 22:35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읽고 있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읽기에는 내 내면의 고통이 너무나도 커서 잘 읽히지 않는다. 말장난같지만, 어쨌건 지금은 감기 때문에 책에 집중할 수가 없다. 오전까지는 견딜만 했는데 오후가 되니까 머리가 멍하고 잠이 쏟아지며, 열도 나는 듯하여 결국 조퇴를 하고 집에 왔다. 집에 와서는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쉴 생각이었는데, 막상 텅 빈 방안에 앉아 있으려니 공허감만 느껴지는 것 같아 일주일 전 쯤 읽고 덮어둔 책을 집어들었는데 결국 몇 장 읽지도 못하고 덮고 말았다. 그리고는 병 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다가 화들짝 일어나 저녁을 먹고(정말 움직이기 싫었지만 뭐라도 먹어야겠기에) 텔레비전을 틀었다. 뉴스룸을 보는데 작가 김훈이 나왔다. 앵커는 요즘 남한산성이라는 영화의 관객수가 350만명을 돌파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나는 그 영화가 지금 한창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딱히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는데, 오늘 인터뷰를 보고나니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김훈이 쓴 영화의 원작소설인 <남한산성>을 읽고 싶은 마음 또한 생겼다. 그 인터뷰의 무엇이 나를 그런 심정으로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김훈의 어눌한 얼굴표정과 말투는 어딘가 마음을 끄는데가 있었다. 오래전에 나는 그의 <칼의 노래>를 구입한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 읽지 않고 있었다. 아마 처음 그 책을 살 때 나는 살짝 의무감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것 같다.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이순신을 그렸다는 점과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이상야릇한 의무감, 혹은 속물성이라고 해야할까?)과 당시 많이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얇팍한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그렇게 사놓고는 결국 아직까지 읽지 않고 있으니, 내가 얼마나 김훈이라는 작가를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았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읽어봐야 매력을 느끼든 말든 할 것이 아닌가? 나는 그가 쓰는 글의 소재와 내용이 좀 고루하지 않을까 하고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헌데 이상하지. 나는 그의 <화장>이라는 단편 소설을 읽고 감상문까지 쓴 적이 있었다. 감상문을 쓴 것과 실제로 내가 매력을 느끼는가 하는 문제는 별개이지만. 김훈이 실제로 말하는 것을 들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가 작가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투가 상당히 문어체적이라고 느꼈다. 어쩌면 그 점 때문에 내가 그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매력을 느끼는 이념에 물들지 않은 인간에 대해서 생각했다. 오로지 아는 것이라고는 내 식구와 밭과 집밖에 모르는, 일상이 전부인 생활인에 대해서. 아, 어쩌면 그 말 때문에 내가 그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어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자면 일단 감기부터 나아야겠지. 감기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비로소 가을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고,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김훈의 소설을 읽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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