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이후, 2004.

시월의숲 2017. 10. 29. 21:35



'타인의 고통'이라는 제목 때문에 읽게 되었다. 제목 그대로 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혹은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의 고통을 내가 조금이나마 알고 공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 책을 읽음으로써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이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혹은 미치기나 하는 것인지),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내가 연민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고통의 이미지들이 우리에게 주는 어떤 한계와 겪어보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었다.


주로 전쟁과 관련된 사진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사진을 보면서 우리는 일종의 연민과 분노, 안타까움, 슬픔 등의 감정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전쟁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고통을 우리가 진정 알 수 있을까? 작가는 그 부분에 대해서 당연하게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것이 아니다. 그는 사진으로 보는 수많은 전쟁의 양상들을 예리하게 파고들면서(사진을 찍는 사람, 찍히는 대상,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관점에서) 우리가 평소 생각하지 못했거나, 선입견에 물들었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라고, 그것은 좀 다르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느냐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한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무언가를 너무나도 익숙하지 않게 바라보는 것. 물론 사진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지금의 관점에서 좀 진부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이미지들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감각이 무뎌지지 않고(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지지 않고) 늘 민감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이 먼 곳의, 이방의 검거나 누런 피부를 가진 사람들만의 고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그들이 왜 고통을 느끼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고, 그 고통이 우리와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연민의 감정만을 느껴서는 안된다는 것. 저 먼 나라의 분쟁이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혹은 나와 어떻게든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는 것. 중요한 건 그것이다.


어떤 이미지들을 통해서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에 상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텔레비전 화면에서 클로즈업되어 보여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특권을 부당하게 향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련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비록 우리가 권력과 맺고 있는 실제 관계를 또 한번 신비화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랼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1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