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이창래, 『영원한 이방인』, 알에이치코리아, 2015.

시월의숲 2018. 1. 28. 13:20



나는 이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느 책이든지 그것을 다 읽고 난 후 느껴지는 허탈감이 있다. 그것은 한 책을 집중해서 빠져들듯 읽지 못하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조금씩 오래도록 읽었을 때 더욱 짙게 나타나는 감정으로,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내 감정이 그러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난 후, 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는 몇 달 동안 무엇을 읽은 것인가. 나는 이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한 권의 책을 읽고 그 책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내가 이 책을 읽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동안 정신없이 바빴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수전 손탁의 <타인의 고통>을 읽고 난 후 거의 석 달 동안 나는 이창래의 <영원한 이방인>을 읽었다. 거의 읽지 못하는 나날이 많았고, 읽는다해도 하루에 몇 페이지밖에 읽지 못했다. 그것은 이 책이 내게 흥미롭지 않아서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단순히 업무 때문에 정신이 없었고, 책도 읽을 수 없을만큼 많이 피곤했기 때문에? 아, 이런 한심한 생각이라니. 하지만 어떤 안타까움 때문에 나는 이 책에 대해서 말하기 보다 우선 이 책을 아주 느리게, 오랫동안 읽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한국계 미국인인 이창래의 <영원한 이방인>은 이민 2세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라고 거칠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주인공의 고뇌가, 이민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이, 진정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나, 내 진정한 모국어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이 책에 담겨 있지만, 내가 그것을 진정 마음 속으로 느낄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런 주제의 책은 작가 자신이 이민 2세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물론 작가는 이 책이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민자라는 설정만큼 자신이 이방인임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깊히 생각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나타내는 징표가 또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조금씩은 이방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황량한 벌판에 홀로 내던져진 이방인들이 아니던가?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이민 2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넓게는 우리 모두의 삶,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품을 수밖에 없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이민 2세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인 아버지에 대한 시선이었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자식들이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과 얼핏 닮은 것 같다가도, 미국인으로써 미국의 문화에 동화된 한 인간이 한국 문화 속에서 자란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과는 사뭇 달랐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이민 2세라는 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건, 어쨌거나 그는 '미국인'이라는 사실에 아무런 이의를 달 수 없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헨리 박은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 사실 나는 이 책을 제목 때문에 읽게 되었다.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어떤 고독한 느낌 때문에. 이 책은 내 그런 막연한 느낌과는 달리 나 자신이 빠져들듯 읽지는 못했지만, '이민자'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물론 이 소설은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춘기 소년의 고민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민 2세라는 건 그렇게 조금은 객관적으로(한국인으로써 한국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설정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오랫동안 조금씩 읽었던 이 소설을 이제서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내가 이 책을 읽고나서 든 생각, '나는 이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여전히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이렇듯 책을 다 읽고 난 후 느껴지는 허탈감은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내가 지금 이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으리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먼훗날 어떤 계기로 인해 다시 이 책을 읽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허탈감의 정체를 알 수 없는채로 또 다른 책으로 건너갈 수밖에 없는 것인지... 그럴 수밖에 없는 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