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안토니오 타부키,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 문학동네, 2015.

시월의숲 2017. 8. 20. 22:33



인터넷 서점에서 '페소아'라는 단어를 검색했더니 이 책이 나왔다. 나는 이미 그의 <불안의 서>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터라 그의 다른 작품이 궁금했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해 포르투갈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가 쓴 글이 아니라 그의 글을 읽고 깊은 매혹을 느낀 이탈리아 작가가 쓴 소설이자, 페소아에게 보내는 헌사였다. 제목도 무려 <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이 아닌가!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페소아가 임종 직전 마지막 사흘 동안 자기가 만들어낸 인물들(수많은 다른 이름들로 불리워진)과 만나는 이야기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열렬한 애독자이자 연구자, 작가인 안토니오 타부키는 페소아가 죽기 직전 사흘 동안을 페소아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한다. 이것은 당연하게도 소설이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설정 자체가 이미 페소아가 안토니오 타부키에게 얼마나 큰 영감을 주는 존재였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자신이 열광했던 작가인 페르난두 페소아에게 바치는 '안토니오 타부키 나름의, 참으로 안토니오 타부키다운 헌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배수아가 카프카의 꿈에 관한 글들을 모아놓은 책을 번역하면서, 그 책의 끝에 참으로 인상적인 자신만의 후기(혹은 또다른 소설)를 남겼듯, 이 짧은 글 역시,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끝에 실렸어도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다른 이름'으로 존재했던 페르난두 페소아. 그에게 그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자신 안에 수많은 다른 페소아들을 창조했던 이유 혹은 창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말이다. 아마도 안토니오 타부키 역시 그것에 매혹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는 1960년대 프랑스 파리 헌책방에서 프랑스어로 번역한 페소아의 '담배 가게'라는 시를 발견하고, 페르난두 페소아와 그의 나라 포르투갈과 그의 도시 리스본에 처음으로 눈을 떴다고 한다. 그 시는 내가 읽었던 <불안의 서>의 한 대목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시를 읽으면서, 안토니오 타부키가 헌책방에서 그 시를 처음 발견하고 알 수 없는 전율에 사로잡혔을 그 순간을 상상했다. 나는 충분히, 그 순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시의 첫 대목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싶을 수도 없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내 안에 세상의 모든 꿈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