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가을, 오후, 용문사

시월의숲 2017. 11. 5.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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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용문사에 가고 싶었던 이유가 용문사보다도 용문사 가는 길 때문이었음을, 용문사로 가는 차 안에서 깨달았다. 운전을 하면서 본 풍경으로도 이미 나는 용문사를 잊고도 남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 용문사가 있다는 사실이 더욱 그 길을 아름답게 하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용문사와 용문사로 가는 길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인 거니까. 용문사 가는 길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아쉬움이 크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나는 그곳을 가고자 할 것이다. 가을은 무르익어 하늘은 높고 푸르렀으며, 바람은 시원하고, 색색의 단풍과 오후의 빛이 어우러져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되어버린 작품을 보는듯 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과 그곳에 머문 짧은 시간이 내게 조금이나마 살아갈 힘을 주었다고 한다면, 너무나 거창하고 감상적인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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