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도서관 잡담

시월의숲 2017. 11. 8. 23:46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에 가는 것은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러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는 일 외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자 하는 일이 내겐 어렵다는 말이다. 나는 그걸 매번 도서관에 갈 때마다 느낀다. 도서관에 앉아서 정색하고 책을 읽고자 하면 오히려 집중이 안되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곳이기도 하지만 책을 읽을수도 있는 곳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공간에서 책을 읽지 못하다니, 뭔가 아이러니한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서관 열람실의 분위기는 내가 느끼기에 뭔가 불편하고, 억압되어 있으며, 답답하다. 물론 그곳에는 책을 읽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오로지 책을 읽기 위해 거기 있는 사람들. 도서관에서 책 읽는 사람들을 보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도 보기 좋은 일이지만, 내가 그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으려고 한다면 몹시 견디기 힘들어지고 만다. 내가 느끼기에 그곳은 너무나도 조용하기 때문이다. 그 조용함에 억눌려서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목은 뻗뻗해지고, 활자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 같은 문장을 계속 되풀이해서 읽게 된다. 그러니까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공간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책을 더 읽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 외에 그 어떤 일도 허용되지 않는 공간. 이곳에서는 책만 읽으십시오. 떠들면 안됩니다. 타인에게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하면 안됩니다. 소리를 낮추세요. 나는 물론 그 모든 명시되지 않은 규율들이 당연하며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유로이 책을 읽고자 하는 내 마음에 어떤 무거운 짐을 얹는 것처럼 생각된다. 내가 느끼는 이런 심리적인 압박감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그것에 왜 나는 불편함과 답답함을 느끼는가. 나는 약간의 소음이 있어야만 책을 더 잘 읽을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더 이유가 있다면, 그건 앞서도 언급했듯이, 심리적 자유로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소음이 전혀 없는 조용한 내 방에서 책을 잘 읽을 수 있으며, 이와 달리 적당한 소음이 있는 카페에서도 책을 잘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둘 공간의 공통점은 어떠한 심리적인 억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반면 도서관은 그렇지 않다. 그곳에서는 당연히 조용해야 하며, 타인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한다. 어쩌면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인지도 모른다. 도서관이 책 읽기 적당하지 않은 곳이라는 내 의견은 일반적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내 개인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서관은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다. 그곳에는 다양하고도 수많은 책이 있고, 책을 고르는 신중하고도 진지한 눈길이 있으며, 조용히 책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풍경처럼 존재하는 곳이다.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독특한 아우라가 번져나온다.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일이면서도, 그러한 범주를 넘어서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음악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에 유일하게 인간에게 속하지 않은 어떤 것이다.' 라는. 나는 그것이 음악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서라는 행위 또한 '인간이 하는 행위 중에 유일하게 인간에게 속하지 않는 어떤 행위'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는 건... 어쨌건 내겐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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