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남겨진 사람들

시월의숲 2017. 12. 5. 22:58

문상을 다녀왔다. 10개 정도되는 실이 길게 이어진 지하 1층의 장례식장은 침울하고 비극적이라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소란스럽고 어떨때는 흥겹기까지 했다. 복도가 넓었기 때문인지 각 실마다 사람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복도 벽에는 국화로 만든 화환이 쭉 늘어서 있었는데, 내가 조문을 한 곳에는 벽에 다 세워놓지 못한 화환을 복도 중간에 세워놓아 마치 통로처럼 만들어놓기도 했다. 가족들이 많은 집은 당연히 조문객들 또한 많았다. 나는 같이 간 일행과 출입구에서 만나 부조 봉투에 소속과 이름을 적고 돈을 넣었다. 헌화를 하고 절을 하기 전, 영정사진을 보았는데, 사진 속 그는 무척이나 말라서 불쌍해보일 정도였다. 이미 지병이 있어 병원에 입원했다가 얼마전에 퇴원을 했는데 갑작스레 돌아가셨다고 했다. 절을 한 후,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늦은 저녁이라 배가 고팠다. 우리는 허겁지겁 국밥과 문어, 돼지고기 수육과 전을 먹었다. 먹으면서 우리는 이야기를 했는데, 가족들이 많으면 괜찮지만, 가족이 한 사람밖에 없다거나, 형제가 없는 경우 그 장례식장은 참으로 쓸쓸할 것 같다고 L이 말했고, 우리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J는 내게 나중에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서 애인을 만들라고 말했다. 나는 가족이 많든 적든, 애인이 있든 없든 간에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니, 어차피 모든 것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 남겨진 자들의 몫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죽은 자가 쓸쓸함을 느끼는가? 죽은 자가 슬픔을 느끼는가? 그것은 내가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결코 알지 못한다. 슬픔을 느끼는 것, 쓸쓸함과 고독을 느끼는 것,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모두 남겨진 자들, 살아남은 자들, 아직은 목숨이 붙어 있는 자들의 전유물이라는 것. 만약 죽고 난 뒤 남겨질 사람들이 걱정된다면 애초에 슬퍼한 사람을 남겨 놓지 않으면 될 일이 아닌가? 내가 그렇게 말하자 모두들 허허 웃기만 했는데,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해독하지 못한 채(어쩌면 외면한 채) 일어서서 장례식장을 나왔다. 나를 위해 울어줄 이 없다는 건 슬픈 일인가? 쓸쓸한 일인가? 고독한 일인가? 하지만 나를 위해 울어줄 사람이 있길 바란다는 건 또 얼마나 나약하고 이기적인 일인가! 그들의 슬픔 - 어쩌면 내 슬픔이기도 할 - 은 어떻게 해야 하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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