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멀어지는 것

시월의숲 2017. 12. 4. 23:56

점차 멀어지는 것일까. 이것이, 이런 내 마음이 점차 누군가에게서 놓여나고 있다는 뜻일까.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해결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날섰던 감정이 무뎌지고, 혼란스러웠던 정신이 다시 차분해지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전에, 아직 요동치던 마음을 감출 수 없을 때, 억지로 '나는 괜찮다, 괜찮다'를 외치며 차분해진 척 스스로를 속였던 기만에서는 조금 헤어나온 것 같다. 헤어나왔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자기기만일지도 모르겠지만, 일 년 전 그때로부터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면, 내 마음이 조금 달라졌음을, 달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좀 나아졌는가?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보다 더 나아졌는지 나는 모르겠다. 고요하다가도 갑자기 거세지던 감정의 파도는 좀 잠잠해졌지만, 그 잔잔함이 때로 쓸쓸하다 느껴지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나는 애써 침착을 가장하고, 활발을 연기하며 긍정을 몸에 휘두르려고 노력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때로 나 자신에게 치명적인 허탈함을 준다는 사실에 나는 당황한다. 그때의 내 감정은 다 무엇이었나. 그때의 나는 무엇이었던가. 무엇이 나를 애증에 휩싸이게 하고, 무엇이 나를 그로부터 놓여나게 만들었나. 나는 무엇에 놀아난 것인가. 도저히 내가 나 스스로의 이성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을 낯뜨거운 줄도 모르고 아무렇지 않게 행할 수 있었나. 그리고는 지금 나는 그때의 나를 부러운듯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내가 지난 날의 나를 바라보는 감정은 연민인가, 부러움인가, 슬픔인가, 위로인가. 이러한 것들이 점차 멀어지는 과정이라면, 그 또한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리라. 소리 소문없이 그것은 왔듯, 역시 소리 소문없이 그것은 갈 것이다. 제 스스로의 길을 따라, 아무런 미련도 없이.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심정  (0) 2017.12.09
남겨진 사람들  (0) 2017.12.05
어떤 심리  (0) 2017.11.22
도서관 잡담  (0) 2017.11.08
가을빛  (0) 2017.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