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알 수 없는 세계

시월의숲 2018. 1. 11. 23:04

미국의 어느 지역에서는 영하 60도를 밑도는 날씨 때문에, 뜨거운 물을 허공에 뿌리면 바로 얼음이 되어 버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적설량으로 차가 도로에 잠겨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등의 뉴스가 연일 보도된다. 나는 텔레비전 속 미국의 피해상황을 보면서 지금 한국을 강타하고 있는 한파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영하 10도, 철원 지역의 경우 영하 18도 정도인 것을 생각하고는, 도대체 영하 60도라는 건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지 순간 아찔해지다가도, 나는 그것을 도저히 상상할 수 조차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도저히 알 수 없는 세계, 내가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세계, 내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세계라는 건 내게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코 알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그런 세계, 그런 상태라는 건. 아는 것보다 알 수 없는 것이 더 많은 삶 속에서 그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새삼 그런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면 절벽 끝에 서 있는 듯 아찔해지면서 저 먼 곳을 바라볼 때처럼 아득해진다. 나는 지금 그런 세상 속에서, 그런 세상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으므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고,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을 느끼며,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 된다. 시간이 예전과는 달리 순식간에 흘러가는 것을 몸소 느끼지만, 그것은 시간이 빨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 어쩔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세계가 엄연히 존재하듯, 시간 또한 내 능력 밖의 일이다. 내 능력 밖의 일을 속상해해봤자, 걱정해봤자, 원망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속절없는 시간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마저 다 읽고, 다른 책으로 넘어가기만을 바라면 된다. 오로지 그 생각만 하면 되는 것이다. 간단하지 않은가?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깥은 겨울, 안은 여름  (0) 2018.01.21
내가 나일 수 있도록  (0) 2018.01.17
고통의 세계  (0) 2018.01.06
나를 지탱하는 하나의 끈  (0) 2018.01.01
겨울바다  (0) 2017.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