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고통의 세계

시월의숲 2018. 1. 6. 00:08

사람들은 고통에 관심이 많은 것일까. 지금이 고통스럽고, 고통스러워서 그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고통이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입력하고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 보는 것일까. 작년에 내 블로그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포스트가 '고통은 영원하다'와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읽고 쓴 감상문이었다. 오늘 내 블로그를 접속했을 때, 블로그 결산이라는 팝업이 생겨 들어가보니 그런 분석화면이 나왔다. '고통은 영원하다'는 제목의 포스트는 내가 작년에 고흐의 미디어아트전을 관람하고 난 후 썼던 것인데,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글의 한 문장이다. 나는 그 짧막한 문장이 당시 영상으로 본 고흐의 그림들보다 더 인상적이라고 느꼈다. 고통은 영원하다는 그 짧고도 선언적인 문장 앞에서 누구든 발걸음을 쉽게 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고통이란 우리 인간들의 영원한 화두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어쩌면 고통을 잊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고통.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떻게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우리는 영원히 고통받는다. 형벌. 그러고보면 삶 그 자체가 고통이 아닌가. 그 명확하고도 날카로운 인식 앞에서 우리의 무릎은 꺾인다. 삶 자체가 고통이라면,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삶이 슬픔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우리는 그리 슬퍼할 이유도 없을 거라고. 삶 자체가 슬픔인데 무엇을 더 슬퍼할 것인가. 무엇을 더 슬퍼할 수 있단 말인가. 이미 우리의 삶이 슬픔으로 이루어졌는데. 고통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삶이 고통이라면 우리는 그리 고통스러워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허무와 체념의 말인가? 하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허무와 체념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극히 날카로운 냉소와 텅 빈 농담을 흘리는 것 말고는. 슬퍼하지 않으리라. 고통받지 않으리라. 고통스러워하지 않으리라. 나는 오히려 슬픔과 고통의 삶 속으로 더 깊이 침잠해 들어갈 것이다. 이것이 내 새해의 다짐이라면 다짐이다. 그 끝에 뭐가 있는지, 한없는 추락과 어둠만 있을 것인지, 발을 딛고 올라올 바닥이 있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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