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내가 나일 수 있도록

시월의숲 2018. 1. 17. 23:48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언가를 정신없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돌아보면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정신이 없었는지, 내가 무엇을 그리 열심히 하고 있었는지. 무언가를 하고 나면 또다른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 그 다음 또 다른 무언가가 계속. 기분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개를 바닥에 떨군채 골몰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들면 아무도 없고, 나혼자 텅 빈 공간에 남겨져 있다. 곧이어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지고 이어지는 정전 혹은 침묵. 나는 순간 당황한다. 그러다 다시 지금까지 무얼 하고 있었는지 깊은 생각에 잠긴다. 요즘은 쳇바퀴를 많이 생각한다. 내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일 년이, 내 삶이 거대한 쳇바퀴 속에서 반복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다. 하루종일 일을 하다가 집에와서 밥을 먹고 자고 다시 일어나 일을 하고 집에 와서 밥을 먹고 다시 자고... 요즘 내게 집이란 여관과 다름없다. 단순히 잠을 자기 위한 숙박시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온종일 일에 매달려 있다보니 나 자신이 점차 피폐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다. 아무런 희망도, 재미도, 여유도 느끼지 못하는 삶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 것인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라고 한정해도 될까(정말 그렇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을 것이다). 사람들은 결코 타인의 삶을, 고통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다. 짐작하지 않는다. 이해하지 않는다. 아니, 믿지 못하고, 짐작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하긴, 그런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 무엇을 바랄 것인가. 그러니 내가 그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차피 인정 받기 위해 하는 일은 아니니까. 다만 나는 내 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더이상 피폐해지지 않도록. 더이상 내가 나로 살아가는 일에 방해받지 않도록. 내가 나일 수 있도록.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도록. 하지만 이런 다짐과는 별개로 점차 지쳐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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